검사 하도야는 국모회 여의도 사무실을 방문하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참상이었다.
“부검을 위해 이송했습니다.”
단발머리에 ‘과학수사’란 글귀가 새겨진 조끼를 착용한 여자 경찰이 짧게 말했다. 수수한 인상이었으나 눈매는 매섭게 보였다.
“범인에 대해서는 참고할만한 증거가 나온 게 있소?”
하도야의 질문에 여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문가로 추측 되는데…현장은 지독합니다. 우발적 살인은 아니고 계획된 범행으로 추정합니다. 살해 현장을 목격한 프로파일러의 분석에 의하면 원한 관계가 아니면 시위를 위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위라면…보여주기 위한 살인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일종의 경고 메시지가 삽입돼 있다고 하더군요.”
“파견된 범죄 심리분석관을 만나보고 싶은데…가능합니까?”
“왜 그러시죠?”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요.”
“이런 잔혹한 현장에는 구체적인 게 별로 없습니다. 살인자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건 너무도 유명한 정설이죠.”
하도야는 기분이 약간 상했다.
“난 그쪽의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요. 그 프로파일러는 어디 소속이었소?”
“과학수사팀입니다.”
“그쪽은요?”
“과학수사팀…맞아요.”
“그럼 좀 불러줘요.”
하도야는 약간 짜증나는 어투로 말했다. 여경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바로 앞에 있습니다. 접니다!”
하도야는 다소 거만하게 콧대를 내미는 여경을 어이가 없어서 물끄러미 봤다.
“자네, 지금 나랑 말장난 하자는 건가?”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뭐야?”
여경은 재기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메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검사님이 매우 서둘고 흥분하신 상태라 안정을 찾자는 의미였습니다.”
“내가?”
여경은 얄미울 정도로 또박또박 설명했다.
“검사님은 도착 직후부터 살인현장의 수사 조건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본인의 궁금증만을 쏟아냈습니다. 그것도 감정이 고조돼서! 냉정하고 과학적이며 치밀해야 할 사안들을 온통 혼란스럽게만 만들었습니다. 검사님의 심리적 상태가 평상시와는 매우 다르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단 쉬어가실 수 있도록 양념 질을 했다는 것 인정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검사님은 보다 검사님다워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검찰중의 검찰인 하도야 검사님!”
하도야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부여 방효순 경장과는 또 다른 면을 지니고 있는 개성 만점의 여자 수사관이었다.
“날 알고 있소?”
“유명인사시잖아요. 경찰에서도 요즘 제대로 된 검사님의 탄생에 응원을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이건 아부가 아닙니다.”
“미안해요…내가 성급했다면 사과하죠.”
“이해합니다. 스트레스 굉장할 겁니다. 특히 국모회는 정경비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단체였으니까요. 검사님의 심경 충분히…알고 있습니다.”
하도야 검사는 이제 다시 범죄 심리분석관을 자세히 살폈다. 피부가 하얗고 보조개도 매력적으로 보였으나 무엇보다 그녀를 돋보이는 것은 살아있는 눈빛이었다.
“좋은 눈을 지니고 있군요.”
“감사합니다. 경위 차민경입니다.”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니면 시위…경고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소?”
과학수사관 차민경 경위는 순간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일종의 보여주기 위한 과시형 살인이라 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