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최대 부품공급업체 현대모비스가 정부 정책으로 초긴장 상태에 휩싸였다.
정부가 차량 정비명세서에 '순정용품'이라는 용어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즉 명세서에 순정부품과 일반부품으로 구분해 표기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22일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정비명세서에 재제조품을 별도로 표기하고 자동차 제작사가 공급하는 신품과 부품제작사가 공급하는 신품을 동일하게 표기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자동차 순정용품과 재제조품이 성능에서 차이가 없고 소비자들에게 재제조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지난 5월 입법예고했다.
국토부는 이미 관계부처와 협의를 끝내고 소비자원의 의견수렴도 마친 상태다. 이에 따라 시행규칙은 법제처 심사를 거쳐 오는 10~11월께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순정용품은 모비스가 여러 하청업체에서 납품을 받아 공급하는 공급하는 부품이다. 이 제품은 공식명칭은 아니지만 차량 제작사에서 만들기 때문에 부품의 안전성과 신뢰성이 높다.
이 때문에 순정용품은 소비자들에게 마치 '진품'이라는 의미로 각인돼 있다.
이에 비해 재제조품은 특정 부품을 분해 후 다시 조립해 새 제품과 같은 성능을 내도록 만들었다. 분해, 세척, 검사, 수리, 조립 등의 과정을 거치는 재제조품은 성능면에서 순정용품과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이 제품은 부품을 재활용해 만들기 때문에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 부품으로 먹고사는 현대모비스는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순정용품 가격이 재제조품에 비해 가격이 비교적 비싸고 순정용품과 재제조품 품질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굳이 비싼 돈을 내고 순정용품을 구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경기침체로 주머니가 가벼워져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감안할 때 그동안 매출증가로 '잘나간' 현대모비스가 재제조품 판매 증가라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껏 정비업체는 정비를 한 후 정비명세서에 차량제작사 부품(순정용품)과 일반 제품(재제조품)으로 나눠 표기했다"며 "이 같은 구분이 소비자들에게 제품 품질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동차 안전성 측면에서 볼 때 순정용품과 재제조품 품질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구분해) 표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특히 순정부품과 일반부품을 별도 표시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안전성이나 기능면에서 품질 차이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정부가 계획중인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럴것이 현대모비스는 국내 자동차 부품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규칙 변경으로 지금까지 시장에서 누린 우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재제조품이 순정용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최근 인기를 누리면서 한라그룹 부품계열사 마이스터가 재제조품 시장 확대에 나섰다.
마이스터는 유통망 확보를 위해 자동차 검사정비사업조합과 손잡고 재제조부품을 늘릴 계획이다.
이에 대해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시장에 재제조품 진출을 우려하는 것은 아니며 환영하는 입장"이라며 "다만 보증수리 문제와 품질 문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동차에서 A라는 부품을 교체하면 다른 부품에도 영향을 주는 게 상식"이라며 "A가 순정부품일 경우 보증수리가 가능하지만 일반제품일 경우 보증수리가 불가능해 소비자 피해나 분쟁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는 '재제조업체 살리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인 재제조업은 성장성이 크지만 한계가 있어 만년 유망주에 그쳤다. 그러나 차량 정비명세서에 재제조품을 표기하면 성장할 수있는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