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의 가격인상이 봇물을 이룰 조짐이다. 물가안정이라는 명분아래 정부의 규제를 받아왔던 식품업체들이 정부의 '보이지 않은 손'에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철수하는 등 정부의 눈치를 살피던 식품업계는 올 하반기 들어서는 더 이상 못참겠다며 가격 인상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라면에 이어 햇반, 참치캔 등 생필품이랄 수 있는 서민 먹거리들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정부도 식품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과거처럼 가격 동결 요구 대신 원가 인상분을 감안한 수준의 가격 인상은 묵인해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불황에 시름깊은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질 전망이다.
◇ '햇반'·'참치캔' 가격 인상
8일 CJ제일제당(대표 김철하)은 지난 7월30일부터 햇반 210g맨밥 제품의 가격을 기존 1280원에서 1400원으로 9.4%, 햇반 전 제품의 가격은 평균 9%인상했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은 다시다 가격도 300g 기준 4650원에서 5020원으로 7.9%인상을 단행했다. 500g 대형 제품은 6.5%인상했다.
CJ제일당 관계자는 "햇반은 10년 동안 가격을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며 "지난 10년간 쌀값은 물론 포장용지 등 기존 원자재 값 인상분을 한번도 반영하지 않아 원가 압박을 받고 있어 가격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참치캔 1위 업체인 동원F&B(대표 김해관)도 참치캔 9개 품목에 대해 7.6% 올리기로 하고 지난달 말부터 대형마트를 시작으로 편의점 등 유통채널에 순차적으로 인상률을 적용하고 있다.
원재료 비중이 높아 다른 가공식품에 비해 원가 압박이 참치캔은 최근 원료로 쓰이는 가다랑어 가격이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영업 손실이 커지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달 기준 가다랑어의 국제시세는 톤당 2200달러대로 지난해 2분기에 비해 24%가량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 라면도 가격 인상 '봇물'
밀가루 자급률이 1%도 안되는 라면업계의 가격 인상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밀가루 국제 가격은 한달전보다 40% 가량 급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양식품(회장 전인장)은 '삼양라면'을 포함한 6개 품목의 라면가격을 5∼10% 인상키로 하고 시기를 검토중이다.
봉지면의 경우 주력제품인 '삼양라면'과 '수타면'을 700원에서 770원으로 10% 인상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관령 김치라면'과 '삼양라면 클래식'은 680원에서 730원으로 7.4% 인상할 계획이다. 용기면인 '컵 삼양라면'은 800원에서 850원으로 6.3%, '큰컵 삼양라면'은 1000원에서 1050원으로 5% 인상을 추진중이다.
삼양식품이 라면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밀가루·팜유 등이 급등합에 따른 원가 부담 압박 때문으로 2008년 3월 이후 4년 4개월 만이다.
팔도(대표 최재문)도 이달부터 일부 라면 제품의 소비자 가격을 평균 6.2% 인상했다. 이에따라 소비자 가격은 50~100원 정도 인상된다. 팔도의 라면 가격 인상도 2008년 이후 4년 만이다.
농심(대표 이상윤)은 이미 지난해 11월 26일부터 라면류 제품의 가격을 평균 6.2%, 약 50원 인상했고, 풀무원식품도 지난 2월 '면류' 제품에 대해 평균 8%가격을 올렸다.
◇ '두유', '맥주'도 줄줄이 인상
마실거리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정식품(대표 손헌수)도 베지밀 a,b 등 하얀두유에 대해 이번주 약 13.3%가격 인상을 단행할 예정으로 대형마트와 협의중이다. 이에따라 대형마트 기준 베지밀 1병은 600원에서 680원으로 80원 정도 오른다. 베지밀 가격 인상도 2008년 이후 4년만이다.
정식품은 유아식 제품도 평균 14.7% 올리는 등 전체 30여개 품목 중 10여개 품목에 대해 가격 인상을 단행키로 했다.
하이트진로(대표 이남수)도 맥아 등 원부재료 가격 인상 등에 따라 지난달 28일부터 맥주 출고가격을 5.93% 인상했다.
◇ 그래도 무서운 '정부' 눈치보기
식품업계 한편에서 용감하게 '가격 인상'을 선언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정부 측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래서는 안되는 데 가격과 관련해 정부 부서와 협의를 하고 있다"며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농식품부, 국세청 등 식품 가격 관련 부처의 경우 대관업무 담당을 통해 우회적으로 식품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식의 여러가지 요청을 해오고 있다"고 귀뜸했다.
한편, 지난해 말 맥주가격 인상을 추진했다가 철회한 오비맥주(대표 장인수)는 현재로선 가격인상 계획이 없다.
롯데칠성음료(대표 이재혁)도 지난해 11월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등 5개 음료에 대해 최고 9%인상을 단행했다 일주일만에 철회한 후 가격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풀무원식품(대표 이효율)도 지난해 12월 22일 평균 7% 올리기로 했다 7시간만에 철회한 두부, 콩나물 등 10개 품목에 대해서는 가격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