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통일국가인 신라는 우리민족의 고향이요 뿌리이다. 본보에서는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에 나의 뿌리는 무엇이며 나의 문중과 가문은 어떤 경로로 오늘에 이러렀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신라 성씨공원'건립을 목표로 우선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시민들의 중지를 모으고자 한다. 이 공원이 완성되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는 나의 뿌리를 찾는 교육의 공간을 마련하게 됨은 물론 경주를 찾는 전국의 수학여행단이 반드시 찾는 코스로 만들어 훌륭한 관광소재거리가 되도록 할 예정이다. 추후 시민주 공모 등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것을 약속하며 우선 100개의 성씨를 목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①경주김씨
경주김씨 시조(始祖)는 신라 대보(大輔)의 벼슬을 지내신 알지(閼智) 공(公)이다. 공(公)은 서기 65년 봄 3월 밤에 지금의 경주시 교동소재의 계림에서 탄강했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의하면, 왕이 금성(金城) 서쪽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새벽에 신하를 보내 알아보게 하니 숲속에서 찬란한 빛이 밝게 빛나고 자주(紫朱)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까지 드리워지고 구름 속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는 황금 상자가 걸려 있는데 그 상자 속에서 빛이 나오고 나무 밑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왕이 숲으로 가 그 상자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장 일어났는데 그 아이의 자태와 용모가 범상치 아니하므로 왕이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내린 아들이 아니겠는가” 라고 기뻐하며 어가(御駕)에 태워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들이 서로 기뻐 춤을 추며 뒤를 따랐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니 그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성은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김(金)이라 했다, 그 후 태자로 책봉해 왕위에 오르시게 했으나 극구 사양하고, 재상(宰相)인 대보(大輔)의 벼슬을 제수(除授)받아 대보공(大輔公)이라 부르게 됐다. 그 후 공의 7세손인 김미추(金味鄒)가 경주김씨로는 첫 왕위에 오르시니 이분이 곧 신라 제13대 미추왕이다. 신라 992년간 56왕 중 경주김씨 38왕이 왕위에 올라 신라 천년의 치세(治世)를 누렸다. 경주김씨 38왕이 신라를 다스리는 동안 화백회의를 통해 고대사에 유례가 없는 민주정치를 구현하고 화랑도와 세속오계를 창도(唱導)해 나라를 이끌 인재의 양성과 백성의 나아갈 바를 가르쳐 3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와 같은 불후의 민족문화의 정수(精髓)인 신라 문화와 예술을 꽃 피워냈다. 경주김씨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중시조로 하여 본관을 경주로 득관(得貫)해 선조의 숭고한 애족애민 사상과 찬란한 신라문화 창달의 예지(睿智)를 이어 받아 국내 유수의 명문거족으로 크게 번성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