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팔우정로타리에는 해장국식당이 즐비하여 '팔우정로타리'라는 말이 나오면 해장국이 먼저 떠오른다. 동기회 연례모임이 있을 때는 밤늦게까지 즐겁게 행사를 하다보면 이튼 날 아침은 주변 여관에서 늦게 기상을 하게 된다. 우정의 술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절주의식 없이 과음한 탓으로 자고 나면 수면부족과 구강에 남은 주향으로 입맛이 변하여 산해진미라도 반갑지 않다. 하지만 모두 둘러 앉아 간밤에 엮었던 줄거리를 스토리텔링하며 맛보는 팔우정 해장국은 일구난설의 경주별미이다. 다른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해장국과는 대비할 수 없는 참맛이다. 요즈음도 그 앞을 지나가다보면 문간에서 초로의 아주머니가 정겨운 눈길을 주면서 해장국의 잠재된 역사적 미각을 각성시켜 준다. 그래서 인근 지역사회의 미식가들에게도 팔우정해장국은 경주의 대표적 음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팔우정해장국은 가도의 랜드 마크인가. 분명 팔우정은 정자정(亭)자(字)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식당가로서의 팔우정이 아니라 유생과 청소년들이 서책을 읽고 명유와 소객이 글벗을 만나 시작 시창을 하고 강론을 했던 교육과 여가의 공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서책을 보고 강론을 폈던 선비들은 떠났고 정자는 없어진지 오래지만 팔우정은 최초에 해장국식당가를 목표로 해서 세운 것은 아닐 것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팔우정은 모습이 살아지고 실종 흔적의 기억을 위해 '팔우정'이란 작은 표석이 풍우설상에 씻기더니 언젠가 주변 환경을 다듬어 소공원 속에 '팔우정휴허비'를 세워 영원히 환생불가의 표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경주최씨 배반문중에서 팔우정 복원을 포기한 것 같아 팔우정의 건립유래와 그 교육적의 의의에서 볼 때 팔우정은 한 씨족의 문화유산만이 아니라 경주시민을 위한 공익적 교장(敎場)이었기에 비록 숱한 세월에 그 정체가 사라져간다 할지라도 조속히 복원되었으며 하는 마음 없지 않다. 팔우정은 임란에 창의하여 군공으로 현감으로 제수되었으나 항명불수한 육의당 최계종공이 관직을 사직하고 은사의 관으로 귀향하여 1614년에 시림의 북반저사 일각에 단을 모으고 지은 정자이다. 공은 장자 동로가 아들 팔형제를 낳을 때마다 한 그루의 괴목을 단상에 심어 모두 팔주를 심었다. 그래서 이 정자가 팔우정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옛날 중국 한나라 시대에 순숙이란 사람이 아들 팔형제를 두고 살던 마을 이름이 고양리인데 그 팔형제를 닮았기 때문에 경주 사람들은 이 팔우정을 고양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나무를 심는 것은 심는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 심는다. 묘목이 자라듯이 자손이 성장하여 우람한 거목이 되는 것은 할아버지의 소박한 소망일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시간적으로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고 햇볕과 공기와 영양분이 제공되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인간 교육도 나무를 심어 키우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자손이나 후학들에게 동량적 인재가 되라고 교육하는 것도 나무와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쓸모 있는 사회인이 되라는 염원이 팔우정에 괴목을 심은 육이당의 깊은 애손지심이 아닐까. 그 후 팔우정은 세구년심에 풍우설상으로 퇴락하여 몇 차례 단과 정자를 개보수하고  팔우정이라 세긴 단갈을 세워 낙성 고유하면서 겸하여 향음주례의 예석을 베풀었던 것이다. 팔우정은 육의당의 장자 아들 팔형제만이 아니라 그들 14명의 종반이 때로 함께 이 정자에서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우애를 돈독히 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팔우정을 개방하여 향유들이 이 정자에 모여서 향음주례를 가지며 제영을 하였다고 하니, 오직 술만 마시면서 즐기며 놀았던 유흥장이 아니었다.  제시한 운에 따라 시를 짓고 또한 시창을 하였다는 전래의 기록으로 보아 팔우정은 한낱 유희공간이 아니고 향약을 지키고 시민정서를 바르게 가꾸며 민풍 교화의 기능을 하였던 곳이었다. 향음주례는 고을의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던 옛 풍습으로 향음, 향음례로 약칭되기도 한다. 이 향음주례는 고대 중국 주나라 때 비롯된 것으로 향학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그 덕행과 도예를 모아 현자를 선발하여 군주에게 추천할 때 그 향당의 향대부가 주인이 되어 축연을 베풀었는데 이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런 뜻을 품고 있었던 팔우정의 향음주례를 서책에서 읽어보는 문장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도심의 주요위치인 팔우정 공원에 우뚝한 모습으로 복원되어 이 시대의 신지식인들이 선현의 유풍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시재원이 투입되어 도심의 아담한 교육적 공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김 영 호경주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