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고 서리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자 갚고 몇 섬은 조세내고 얼마는 제사 쌀 얼마는 씨앗이며 소작료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꾸어 쓴 빚돈들도 낱낱이 청산하니 많은 듯하던 것이 나머지가 얼마 없다 이는 농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12월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입니다. '농가월령가'는 달과 절기에 맞춘 농사일과 풍속을 담고 있는데, 정약용 선생의 아들 정학유가 조선 헌종 때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장단에 맞춰 흥얼거리며 농사 지식도 습득하고 시름도 달랠 수 있는 유용한 노래입니다. 겨울 대목을 좀 더 보면, 동지는 명절이라 새해가 멀지 않다 철음식 팥죽 쑤어 이웃 친척 나눠 먹세. 새력서 배포하니 내년 절기 어떠한고 낮이 짧아 덧없고 밤이 길어 지루하다. 동지팥죽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에도 여럿이 팥죽을 나눠먹었던 모양입니다. 새해 달력을 나누는 모습도 보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긴 겨울밤은 우울하고 추웠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남은 양식의 겨울나기를 가늠하며 불안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두운 먹구름만 드리운 듯한 삶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길쌈과 물레가 도는 긍정의 풍경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짧은 해에 끼니 마련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안사람의 재미로다. 아이들의 글 읽고 노는 건강한 모습이 행복임을 노래합니다. 물레가 도는 한편에서 글을 읽고, 장난에 열중하는 어린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농촌아낙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이것이 옛날의 12월 풍경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겨울은 가을 추수가 끝나고 다음 해 씨를 뿌리는 봄까지 '낮이 짧아 덧없고, 밤이 길어 지루한' 시간이었으며 다가올 봄을 준비하면서 안팎의 생각들을 모으고 나누던 사유의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겨울은 모임과 송년행사, 일 년의 공과를 나누는 논공행상, 참으로 숨이 가쁩니다.   11개월을 쉼 없이 달려왔으면서도 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남은 한 달을 지나온 일 년보다 더 정신없이 보내버립니다.  우리는 현재,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입니다. 마무리와 정리가  끝의 의미는 아닙니다. 일 년의 12월은 2년을 놓고 보면 중간이고, 3년으로 보면 3분의 1 지점입니다.  12월은 11월에서 이어져 1월을 맞이합니다. 보내고 맞이하는 형식 속에서 우리의 마음만은 늘 현재를 살고, 현재를 통해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부르는 신월령가는 떠나는 것이든 보내는 것이든 언제나 우리 앞에 남아있는 소중한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새기는 12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종 우불국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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