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지난주부터 내가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시점에, 한 여자의 이야기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반공의식이 투철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재미교포 신은미. 그저 그렇게 태어나 자란 우리들과는 다르게 참 고생 없이 살았겠구나, 현재도 먹고사는 걱정으로 아침이 무거운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에게 슬쩍 비위가 상하는 이 여자. 별 것 아닌 이 여자를 이렇게 뜨는 건 종편 덕분이다.  노래를 잘 불러서 음악교수인지 강사인지를 하며 남편과 북한 여행을 다녀온 기행문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고, 통일부는 동영상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실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이렇게 북한관련의 글이 뜨자 평범했던 이 여자, 서서히 톱스타의 예감을 했던 것일까? 종편을 볼 시간의 여유가 없는 나는 어쩌다 설핏 이 여자가 부르는 북한 노래를 귀 곁으로 들었다.  간절하다 못해 간드러지고, 절절하다 못해 청승이 묻어나는 애절한 귀곡성의 음색을 개인적으로 싫어해서 금방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사제폭탄 소식. 사람의 손길이 정말 필요한 오지의 가난한 나라가 아닌, 니 맘대로 벌어서 니 맘대로 쓰는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국교(國敎)처럼 자리 잡은 미국에서 호의호식 잘 사시다가 심심하셨나?  아니면 극우애국심이 지극한 가풍에서 유산이 된 애국심이 극도로 팽창해서 통일을 생애 과제로 느낀 것인가? 이 여자의 행태, 분명히 말하지만 통일에 도움 안 된다. 북한을 다녀왔다고 북한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본 것이 내재된 것의 전부가 아니며, 지극히 단편적인 몇 몇 형상으로 북한을 재단할 수 없다. 남한 역시 그렇다. 부국(富國)으로 보이는 서울의 이면에 참으로 처참한 상황의 서울시민이 숱하게 존재한다. 어느 사회든 다양한 이면이 존재하겠지만 북한의 경우는 이 시간에도 탈북자를 양산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 온 새터민이 2만여 명이다.  "북한 주민들은 젊은 지도자에 기대감이 차 있고 희망에 차 있는 게 보였다. '김정은을 만나셔서 사진을 한 장 찍으라'고 할 정도로 친근한 지도자 같았다" "북에서는 세 쌍둥이가 6Kg이 될 때가지 산원에서 돌보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섬세한 마음과 제도가 이렇구나, 라는 생각을… " "임신9개월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산원에서 사람이 온다. 낳기 일주일전부터는 매일 온다. 그걸 듣고서 아기를 참 귀하게 생각하는 구나" 이상은 신은미가 본 북한이다.  자의적 판단에 의한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실소했다. 이 여자 혹시 전두엽 미발달 아닌가?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북한의 누군가가 일부 부유층만 갈 수 있는 서울의 고급조산원에서 인터뷰를 했다면?  교육비가 대학과 맞먹는 최고급 돌봄의 유치원에 가보았다면? 그런 따위로 자본주의의 무한한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일련의 감성적 말초신경적인 것들이 공산주의의 장점은 아니다. 인민이 경직된 이념의 국가에 기대어, 그 국가가 베푸는 전반적 삶의 방식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공산의 개념은 이미 자명한 실패로 판정 나 붕괴되었다. 이건 물론 인민의 탓이 아니며 권력자들의 철저한 이기주의와 부합한다. 진정한 자유와 인권이란 이런 소소한 일상들에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지닌 정신적 가치의 자유, 개인의 특성이 존중받는 사회, 극도의 경제적 격차의 완화, 이런 것들이 아름다운 사회의 조건이다.  남한은 물질만능의 경제 불평등의 심화에 갇혀있는 오류를 적절한 세금으로 환원하여 복지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북한은 이념의 프레임 안에서 철저한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고수해오고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북한 인민의 자유는 남한 국민의 자유보다 보다 현저히 폐쇄적이다. 이 여자가 북한 곳곳에 다니며 한국의 노래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라든가,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라든가, 이런 노래를 부르며 남한은 걱정 없이 이렇게 사랑만 하며 무척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다음에 계속> 이 화 리소 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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