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는 차기 왕위를 이어 받을 사람이다. 왕세자, 세자 혹은 동궁 이라고도 한다.태자는 부왕의 재위기간 중에 책봉 의식을 거쳐 결정되는데, 태자가 될 자격요건은 국왕의 장자이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비 소생의 적장자가 우선적으로 태자(세자)가 되었으나, 장자가 자질이 불비하여 국왕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정비가 아들을 낳지 못했을 때는 후궁의 소생에게도 자격이 주어졌다.  현 왕이 물러나면 곧 왕이 되기 때문에 고관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하급관리가 태자의 권위를 감안하지 않고 주어진 규정된 대로 임무를 수행한 이야기기가 오늘날 세태에 비추어 볼 때 매력을 더해 주고 있다.  초나라 왕이 긴급히 태자를 불렀다. 초나라의 법에는 수레를 타고 내전으로 통하는 문으로 출입을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태자가 부왕의 명을 받고 내전으로 들어가는 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내전은 물바다가 되었다. 그래서 수례에 내려 걸어가게 되면 옷이 젖고 더러워 질 것 같아서 태자는 수레에 내리지 않고 그대로 몰아 내정에 들어갔다. 문을 지키던 장수가 "내전에서는 수레를 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태자께서는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범법행위를 지적하면서 제지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왕이 급히 부르시기에 물이 없는 곳으로 돌아서 갈 수 없다" 고 하면서 기어코 수레를 몰고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문지기 장수는 칼을 뽑아 말을 찌르고 수레를 부셔버렸다.   태자는 문지기 장수가 마치 태자의 권위에 도전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몹시 불편하였지만, 문지기는 태자라는 특수 신분을 고려지 않고 법에 규정된 임무를 수행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태자는 왕에게 본인이 당한 사실을 울면서 고하였다."궁궐 안에 물이 많이 고여서 수례를 몰고 내전으로 서둘러 왔는데, 문지기가 법을 어겼다며 칼을 뽑아 신의 말을 찌르고 수레를 파손하였습니다. 너무나 억울합니다. 반드시 그 문지기를 죽여주십시오" 태자는 문지기를 죽여 달라고 말했으나 왕은 "문지기가 늙은 왕을 위해 법을 어기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태자에게도 아첨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나의 참된 신하다. 만약에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신하가 우습게 되고, 왕이 권위를 잃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그렇게 되면 장차 내가 무엇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겠느냐"  왕은 문지기 장수를 2계급 특진 시켜주고 태자를 후문으로 내보내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말도록 훈계하였다는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법규에 따라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한 하급관리의 예화이지만 많은 의미를 느끼게 한다.  70년대 초반에 서울 D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학교에 교사로 봉직하고 있을 때  재단이사장스님께 정초 진배(進拜)차 갔더니, 귀한 자필 묵서를 주셨다.  "청백가풍직사형(淸白家風直似衡)이요 기수고하낙인정(豈隨高下落人情)이라. 평두불허창승좌(枰頭不許蒼蠅坐)면 사자경시실정평(些子傾時失正平)이라"는 글이었다.   "맑고 깨끗한 가풍은 저울과 같이 곧다. 어찌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르며 인정에 떨어지랴. 저울대 머리는 조그마한 쉬파리가 앉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기울 때는 바른 평평함을 잃게 된다"는 뜻이었다.  가풍이라는 것은 한 집안에서 내려오는 풍습이나 범절이며 특유한 생활형식이다.  D학교법인의 가풍은 청백가풍이므로 소속교직원 모두는 청백가풍을 지키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학생지도나 업무수행에 있어서 신분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지 말고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서 직분을 수행하면 그 정도가 아주 창승(蒼蠅)의 무게라 할지라도 저울대는 기우는 만큼 저울대와 같이 곧은 정신으로 복무하라는 암묵적 지시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공정성은 중요하므로 어언 40여년이 지났지만 함께 보아야 할 묵서라고 생각해 본다.경주사회연구 소장  김 영 호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