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메르스 공포에서 가까스로 자유로워졌지만, 아직은 산 너머 산이다.  열대야를 동반한 삼복더위가 연일 기승이며, 가뭄도 그 끝이 아직은 잘 안 보인다.  바다나 산으로 더위를 피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버티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한때'라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갈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말복이 오는 12일이지만, 주말(8일)이면 어느덧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이지 않은가.   어제 오후 늦게는 내가 사는 마을 인근 산자락 팔각정의 노인들 자리에 끼어들었다. 나보다 훨씬 연로한 노인들은 둥그렇게 둘러앉아 요즘 세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세상이 옛날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날이 갈수록 각박하고 삭막해지고 있어 늙는다는 게 서럽다고들 했다.  젊은 세대라면 지금뿐 아니라 어느 때든 안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반문을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요즘 세태는 '황량 악화 일로'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한 노인은 오십대의 아들도 '백수(白手)'가 되어 함께 헤맨다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한심스럽다고 한탄했다. 나이 든 만큼의 제자리에서 온전히 살아가고 싶다는 뜻도 담고 있었다.   옛사람들은 나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거기에는 귀감이 돼야 할 지혜와 순리(철리)가 깃들어 있다. 마흔은 불혹(不惑), 쉰은 지천명(知天命) 또는 지명(知命), 예순은 이순(耳順), 예순하나는 환갑(還甲)이나 회갑(回甲), 일흔은 고희(古稀) 또는 종심(從心)이라고 부른 것만 해도 그렇다.  마흔은 사물의 이치를 알고 흔들리지 않는 나이, 쉰은 천명을 아는 나이, 예순은 인생의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해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 나이, 예순은 한 갑자를 돌아온 나이, 일흔은 뜻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은 옛날과 판이하게 다른 고령화 사회(또는 고령사회)임에도 사람들이 제 설자리 때문에 좌왕우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십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천명(天命)을 알고 있더라도 제대로 설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인생의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해졌을 때(예순)는 이미 '버스가 지나간 뒤'이기 일쑤인 세상이다.  사람의 수명은 점차 길어지는데 '폐기처분'은 빨라져 나오는 한탄일 것이다.  더욱 서글픈 건 '한 갑자'를 돌아온 회갑 때 자축은커녕 숨기려 하는 세태지만, 그 이후의 문제는 심각하게 마련이다.  몸과 마음이 멀쩡해도 추억이나 반추하며 살아가야 할 판인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뜻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일흔에 이르러서는 시간을 죽이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지고 있는가. 지금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데 '뜬금없이 케케 낡은 이야기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령별 호칭이 시사하는 바, 그 뜻들을 오늘에 비춰보면서 겸허하게 자성의 한때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더 거슬러 오르면, 열다섯은 지학(志學-학문에 뜻을 둠), 남자에 한해 스물은 약관(弱冠)이라 한다.  서른은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라고 이립(而立), 마흔여덟은 십(十)이 네 개와 팔(八)이 하나인 글자(桑)로 풀어서 상수(桑壽)다. 일흔일곱은 희(喜)에 칠(七)이 세 번 겹쳤다고 희수(喜壽), 여든은 산(傘)에 팔(八)과 십(十)이 들어 있어 산수(傘壽), 여든여덟은 쌀농사가 여든여덟 번의 과정을 거쳐 쌀이 된다는 데 근거해 미수(米壽)라고 한다.  옛날엔 장수하는 경우가 드물었겠지만 아흔이 되면 졸수(卒壽), 거기 한 살이 더해지면 백수를 바라본다는 뜻에서 망백(望百)이다. 아흔아홉은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을 빼면 흰 백(白)이므로 백수(白壽)이며, 백 살이 되면 최상의 수명을 누렸다는 의미로 상수(上壽)라 했다.   따지고 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요, 예지 넘치는 의미 부여였다. 더구나 이런 말들이 만들어진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잇값은 여전히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화두로 넉넉하게 값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는 '앞뒤곱사등이'가 돼 버렸다고나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리 됐는지 모두 자성해야겠지만, 화살을 잦게 맞는 정치·사회 지도자들부터 뼈를 깎는 각성과 함께 분위기 바꾸기에 나서야 할 것이다.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그런지 한담도 무거워져 버렸다.  우리 모두 연령별 호칭이 뜻하는 바 제자리에서 화해로, 젊은이와 늙은이가 두루 더불어, 그 호칭의 의미를 증폭시키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트고 닦아나가야겠다.  시인  이 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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