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은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 도우므로 유익을 끼치는 일이요, 인색한 것은 재물을 아끼는 태도가 몹시 다랍고 안타까워 남에게 손해를 끼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자선은 그것이 희생일 경우에만 자선이지 널리 알려질 것을 바라고 하는 자선은 이미 자선이 아니다"라고 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행복은 자선을 행할 수 있는 신념이다. 득은 산수에 있어서 더하기, 실은 계산상으로 볼 때 빼기이다. 서양에서 일어난 자선의 더하기와 동양에서 생긴 손실의 빼기를 한번 생각해보자. 시골의 한 가장이 세 아들에게 유언장을 남겼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양이 전부 17마리인데 죽이지 말고 큰아들은 2분의 1을 가지고, 둘째 아들은 3분의 1을 가지며, 막내아들은 9분의 1을 유산으로 가져 갈 것을 당부했다. 아버지가 사망 한 후 세 형제가 모여서 밤새도록 계산을 해도 도무지 아버지 유언대로 처리가 되지 않았다. 그 마을에 있는 촌장을 찾아가 아버지의 유산을 분배할 것을 의논하게 되었다. 이 촌장은 슬기로운 대안을 내 놓았다. 촌장께서 자선을 베풀어 양 1마리를 형제에게 선사한 것이다. 이제는 18마리가 되었다. 아버지의 유언장대로 큰 아들의 2분의 1은 9마리요, 둘째 아들의 3분의 1은 6마리, 막내아들의 9분의 1은 2마리다. 세 아들은 제 각각 양을 몰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9마리, 6마리, 그리고 2마리 모두가 17마리였다. 마당에 1마리가 남아있다. 촌장은 웃으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자기가 베푼 1마리 양을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해답은 있다. 선(善)을 베푸는 자는 항상 득(得)을 본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얘기도 이상하다. 세 사람이 각각 1만원씩 돈을 내어 3만원을 가지고 여관방에 들어갔다. 셋이서 이구동성으로 시설이 엉망인 방에 사용료 3만원은 너무 비싸다고 불평했다. 이 요청을 들은 여관 주인은 하인을 시켜 5천원을 환불하도록 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5천원을 그냥 돌려주었으면 아무 탈이 없는데, 하인이 2천원은 자기 몫으로 챙기고 3천원을 돌려주었다. 결국 1일당 9천원씩 지불한 셈이다. 그러면 9천원에 셋이면 2만 7천원이고, 하인이 떼먹은 돈 2천원을 합하면 3만원이 아닌 2만 9천원이다. 1천원이 없어졌다. 행방불명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아직도 없다. 득과 실이 빚어진 일이라 어처구니가 없다.손 경 호  논설위원·교육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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