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종교란 친절한 마음"이라 했다. 친절은 다정한 웃음에서 시작되며 웃음을 주는 사람을 가난하게 하지 않으면서, 받는 사람을 늘 부유하게 해 주는 정식적 감동이다. 한때 마르크스가 종교를 폄하하고 말살하기 위해서 "종교는 아편이다" 했지만 사실 열광적인 신자를 보면 1%의 수긍은 간다고 한다. 옛날에는 종교 자체가 범죄적인 불경건한 행위를 조성하는 일이 빈번한 적도 있은 이유다. 모든 종교는 도덕을 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인간 도야의 근본이며, 생활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요, 또한 향료이다. 어긋난 광신자들이 부정과 결탁하여 대중들의 신선한 소망을 멸시하도록 가르치는 종교는 무신론자보다 더 경망스럽다. 종교의 본질은 사유도 행위도 아니고, 직관과 감정이다. 인간은 그들이 신봉하는 종교 때문에 논쟁을 벌이고 무기를 만들고 전쟁도 불사하고 목숨도 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 때문에 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참된 종교의 목적은 윤리의 원칙을 고수하고 절대 귀의(돌아가 믿고 의지함)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종교는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것이므로 비록 비법(秘法)의 베일에 싸여 은폐되어 있더라도, 그 베일은 오직 선택된 자만이 들추어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워진다.  종교와 철학은 같은 선상에 놓인 인간의 고뇌이다. 종교는 초월적인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는 일의 총체적인 체계라 한다면, 철학은 사람이 인생이나 세계의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인간적 학문이다. 친절한 마음에서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종교의 영원한 가치는 환희와 소망에 대한 도전을 이끌어주고, 마음에 희망과 감동을 주는 데 있다. 만약 종교가 없는 도덕률은 방향을 잃고 항해하는 선박과 같다. 캄캄한 밤에 등대도 보이지 않는 경지에서 선박의 위치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종교다. 겸손하고 온유하며 자비롭고 정의로우며 경건한 마음으로 세파를 헤치고 살아가는 인간의 투지가 바로 신앙의 뿌리다. 신앙을 영혼의 약으로 삼고 비록 인간이 새로운 능력을 창조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신앙을 통해서 얻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혜가 믿음에서 나온다. 사람이 신앙을 통해서 얻는 믿음이 종교의 기점이고, 중점이고, 또 종교의 종점이다. 불사불멸이란 희망으로 사는 것이 신앙의 종착이며 모든 종교가 다 그런 희망에서 출발하고 있다. 세상의 몇 곳이 전쟁의 종교를 갖고 있는데 그들의 최고의 가치는 투쟁인데, 평화의 종교를 갖는 인간에게는 그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다. 종교는 위대한 힘이고, 유일하고 진실 된 원동력이며, 생명인데 종교인이 말은 앞서나 행동은 더 이기적이고 인색하다는 유행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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