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들어 태백산이 전국에서 22번째로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됨으로써 법적 위상이 높아졌다. 이로써 통일신라의 중사오악(中祀五嶽)가운데 팔공산만 도립공원으로 남게되었다. 신라의 중사오악은 북쪽의 태백산, 남쪽의 지리산,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계룡산, 중앙의 팔공산을 지칭하고 특히 팔공산을 중심되는 산이라 해서 중악(中嶽)이라 불렀다.  또한 신라인들은 팔공산을 부악(父嶽) 즉 아버지산이라고도 했고 전주의 모악산을 어머니산이라 했을 만큼 팔공산을 나라의 가장 으뜸되는 산으로 여겼다.  특히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단순히 이 산이 나라의 중심산이란 의미 외에도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이 이 산에서 천일기도를 통해 통일대업을 이루게 된다는 설화가 실려있을 만큼 국가적 상징성이 크다. 통일신라기에 가장 신성시했던 팔공산의 위상이 이제 오악 가운데 가장 밑자리로 추락하는 굴욕을 겪게 된 것이다. 이같은 팔공산의 굴욕을 보는 대구 경북인은 자신들의 자존심이 추락한 것으로 동일시하게 되었다. 팔공산의 국립공원 승격이 대구 경북인들의 자존심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산의 역사적 의미와 지역민들이 이 산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정신적 무개와 정서를 생각해보면 이 산의 위상추락은 지역민들의 자존감에 심한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다.  통일신라는 오늘날 한국의 원형(原形)이라 할 수 있고 고려이후 나라의 수도가 한반도의 중부권으로 이전되면서 경상도가 대체로 그 영역의 행정지역이 되어왔다. 특히 대구는 18세기이후 경상도의 중심이었고 팔공산은 대구와 경상도의 상징이 되어온 것이다. 이 때문에 경상북도는 지역정체성의 뿌리를 신라에 두고 최근 정체성찾기를 통해 신라정신을 강조하는 한편 신라를 기점으로 하는 실크로드 재현과 신라사 편찬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대구의 경우도 지역의 최고 브랜드를 팔공산으로 보고 이 산과 관련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대구와 팔공산 인근 지역민들은 지금도 각급학교의 교가에 거의 빠짐없이 팔공산을 삽입함으로써 이 산은 지역민들의 정체성에 깊이 뿌리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팔공산을 지역 제일의 브랜드로 삼아온 대구시와 이 산을 중악으로 섬긴 신라의 정신을 정체성의 상징으로 삼온 경상북도는 그동안 헛된 노력을 했다는 비판를 받아도 변명이 궁할 것같다. 팔공산이 얼마나 명산인가는 경관이 빼어나고 보호받아야할 희귀생물종이 엄청나게 서식한다는 사실과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불교문화재와 유적을 품고 있는 국립공원 경주남산 보다 더 많고 다양한 문화재와 유적이 있고, 국내에선 유일하게 하나의 산에 두개의 불교교구본사가 소재하고있다. 고려초조대장경이 이 산에 보관된 바 있었고 임진왜란당시엔 승군본부가 여기 있었고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만큼 많은 참배객이 찾는 갓바위 부처와 성인을 배출한 가톨릭의 한티 성지가 여기에 있다. 지금도 팔공산은 한국정신의 정화라 할 수 있다. 3년전에는 팔공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면적이 적은 광주의 무등산이 국립공원이 되었다. 당시 광주 지역민들은 국립공원으로서 부족한 면적을 보충하기 위해 모금운동까지 벌였는데 팔공산은 면적이 충분한데도 국립공원이 되지못한 것이다. 일부 지역민의 반대와 대구 경북행정당국의 소극적 자세때문이었다. 팔공산의 자연과 문화를 온전히 향유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은 팔공산의 굴욕을 되씹고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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