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카뮈는 "문화, 그것은 운명 앞에서의 인간의 외침"이라고 했다. 문화를 창조하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지식산업의 발달로 창작물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짝퉁'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관계의 시비는 학술논문에서부터 문학작품, 미술작품, 영화․가요는 물론 지적 창작물과 관계된 모든 영역에서 빈번히 벌어진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창조'에 대한 찬양이 산을 이룰 정도라면, '표절'이나 '짝퉁'에 대한 비난은 천길 절벽과도 같았다. 희랍어로 표절(Plagios)은 '근성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듯이, 이 행위는 명백한 도둑질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습관의 힘』 저자 찰스 두히그(NYT 기자)는 창의성을 높이려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존에 있던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라"고 권하고 있다. 일찍부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대표적인 '모방론' 주장자였다. 그러나 에머슨의 경우 표절은 고사하고 모방마저 '자살'이라고까지 했다. 미국 사회는 창조적 고통에 대해 부(富)와 명예를 주는 한편 표절 행위는 가혹하게 처벌한다. 우수한 두뇌를 수없이 배출하는 배경에는 창의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표절 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지적재산권' 관련법 집행이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거부 빌 게이츠는 미국의 독특한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순정 미국 제품'이라는 말에 수긍이 가고 공감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찍이 작가 미즈너는 "한 저자에게서 도둑질하면 표절이요, 여러 저자에게서 도용하면 연구"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는 다양한 수법으로 표절하고도 아무 일 없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다니는 풍토를 개탄한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표절에 너그럽고 둔감한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학계에서는 표절 시비를 제기한 사람이 되레 이단자처럼 몰리는 경우마저 없지 않았다. 지식산업 전반에 보편화돼 있는 표절 문화가 근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말과 행동은 그럴듯한데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나 물건을 '사이비(似而非)'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짝퉁'이고, '가짜'다. 정교한 '짝퉁'은 '진짜'와 구별하기 어렵고, 때로는 진짜 행세를 한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는 만들어진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정신이 전혀 다르다. 진짜에는 창조적이며 독창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고, 고통스러운 삶과 그 고뇌가 투영돼 있다. 가짜는 겉모습만 진짜를 닮게 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도둑질하려 한다. 미술품을 둘러싼 위작(僞作)시비는 비일비재였다. 동서고금을 통해 대단히 어려운 일로 꼽히고 있듯이, 그 감정은 실로 어렵다. 그래서 자칫 감정이 잘못된 경우 소장자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릇된 인식을 심고, 유통질서를 교란시키게 하기도 한다. 렘브란트의 초상화가 가짜로 알려졌던 뉘른베르크 소장 작품과 진짜로 행세해온 헤이그미술관 소장 작품이 뒤집히는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만큼 '짝퉁'가 판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가짜 미술품이 진짜로 둔갑해 유통되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이젠 가짜 문화, 가짜 상품, 가짜 지도층이 판치는 사회를 정직한 진짜가 아니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짜를 가려내고 추방하는 분위기도 성숙해져야만 한다. 요즘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 논란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무명화가에게 8년간 300여 점의 화투 그림을 그리게 하고 유통시켜 사기죄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콘셉트를 외주(外注)했으므로 자신의 창작품이라는 게 조영남의 변명이다. 현대미술 창작의 관행으로 보면 그의 변명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표절이나 모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기냐, 아니냐'는 그의 '양심'이 잘 알 것이다. 예술의 생명은 독창성과 진정성이 담보돼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