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는 사라진 절터가 참 많다. 천주사, 영흥사, 영묘사, 천관사, 담엄사… 등 폐사가 된 많은 절터에는 당간지주조차도 안 보인다. 그런데 '오릉' 바로 옆에 있다는 담엄사(曇嚴寺)절터에는 다행히 땅 속에 묻힌 당간지주 하나가 보인다. '문천교'를 지나 '오릉' 동편의 '언양로'변에 담암사(曇巖寺)지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담암사(曇巖寺)', 삼국유사에는 '담엄사(曇嚴寺)'로 되어 있다.)'담엄사'가 신라시대 '칠처가람'중의 하나였다니 규모가 큰 대표적인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담엄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삼국유사 '감통'조에 나오는 유명한 '정수사구빙녀 (正秀師求氷女)' 이야기 때문이다. -제40대 애장왕 때, 추운 겨울 어느 날, 황룡사 정수 스님께서 '삼랑사'로부터 돌아오는 길이었다. '천엄사(天嚴寺)' 대문 밖을 지날 때, 한 거지 여인이 해산을 하고 추위에 얼어서, 누워 거의 죽게 된 것을 보고, 스님께서 불쌍히 여겨 달려들어 그 여자를 안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자 거지 여자가 깨어난다 . 그 뒤 정수스님은 거지여자에게 스님의 옷을 벗어주고 스님은 맨몸으로, 황룡사 절로 달려가 짚으로 자기 몸을 덮고 지난다. 그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린다 "황룡사 중 정수를 마땅히 왕사로 봉하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중에 이 사실이 왕에게 알려지고, 애장왕은 정수스님을 국사로 책봉했다는 감동적인 얘기다. 그런데 '감통'조에 나오는 절, '천엄사(天嚴寺)'가 '담엄사'와 같은 절인지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위치로 볼 때 그 절이 '담엄사'로 보인다. (故 이근직 교수도, 동국대 경주 캠퍼스 한정호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몇 년 전, 필자는 "담엄사 터가 어디지?" 궁금하여 한참을 절터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그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경주대학 故 이근직교수의 도움을 받아 땅속에 묻힌 '담엄사 당간지주'를 찾았을 때의 그 감격! 필자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아, 이근직 교수가 그립다.) 며칠 전, 오랜만에 월유 선생(신라문화동인회원)과 필자는, 산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무렵, '오릉' 가까이 있다는, 땅에 묻힌 '담엄사' 당간지주를 찾아 나섰다. '오릉'은 언제 봐도 무덤 사이의 조화로운 간격이 아름답게 눈에 띄는 곳이다. 한적한 오후의 천년고도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박혁거세 모신 '숭덕전' 입구에는 싱싱한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새로 잘 닦아 놓은 오솔길이 보인다. (무성한 잡풀 속에서 길이 약 5.5미터 폭 약 40센티의 투박하면서도 우람한 '담엄사' 당간지주가 땅 속에 말없이 묻혀 있다). 왜 당당히 서 있어야 할 당간 지주가, 무슨 사연이 있길 레, 안타깝게 땅 속에 아직도 묻혀 있을까? 궁금하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나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이 '어떤 절터로 추정'된다는 친절한 '안내판'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사라진 '담엄사지', 그 묻힌 당간지주를 이제는 일으켜 세워서 경주의 새로운 문화재로 활용할 필요는 없을까? 그날 월유 선생과 필자는 아쉬운 담소를 나누며 저무는 오릉을 빠져 나와 시내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