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 도서관 이 층 창밖으로 깃발 셋이 휘날린다. 가운데 태극기를 중심으로 왼쪽은 초록 새마을 깃발, 오른쪽은 흰색 경주시 깃발이다. 대구 기온이 33도였던 어제의 더위가 이어진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바람이 불고 있다. 참새 한 마리가 부산하게 나뭇가지를 들락거리고 초록 잎사귀들도 몸을 떨며 햇빛에 반짝거린다. 도서관 창 안의 풍경 역시 조용한 움직임이 끊임없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책장을 넘기고 모니터의 인터넷 강사가 백보드에 글을 쓴다. 모두가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인다.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풍경일지 모른다. 그런데 밀려오는 이 슬픔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곳곳에서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19세 청년은 구의역 지하철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했고,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일용직 인부들은 용접에 여념이 없었다. 광주에서는 피로에 지친 공무원이 만삭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늦은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날벼락이라는 말 외에 달리 쓸 말이 없다. 그들은 부지런한 개미처럼 일하다 무심한 발에 밟혀 사라지고 말았다. 무심하게 간과한 가스 폭발이나 과중한 업무 뒤에 보이지 않는 삶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개미가 떼 지어 기어갈 때 발로 밟아서는 안 된다. 굳이 살생을 금하는 불법을 들지 않더라도 생명은 애처롭지 않은가. 꼬물꼬물 기어가는 개미의 삶이 고귀해 보이지 않는가. 무심함이 곳곳에 만연해 있었다. 애도의 포스트잇과 꽃들이 청년을 추모하자 그들은 뒤늦게 이번 사고의 원인이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사과했다.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라니, 남의 얘기하듯 담담하게 들리지 않는가. 그 시스템의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비용절감으로 고수익을 얻고자 한 욕심에다 생명에 대한 무심함이 빚어낸 사건을 그리 에둘러 말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선량한 소시민이었고 성실하며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다. 신은 왜 그들을 데려가는가. 수십억을 가로채고도 잘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데 세상은 이처럼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한 청년이 예수에게 어찌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자 예수가 대답했다.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낙타가 바늘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부자인 청년은 쓸쓸히 떠나갔다. 개미처럼 일한 사람들이 갔을 천국을 상상해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경영자들의 수익은 천문학적 숫자로 보인다. 대가족을 거느린 기업인은 자신의 행보가 개미를 밟는 거인의 발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뤼궈룽이 쓴 '경영의 지혜'란 책에 프랑스 재계 명언이 나온다. 직원을 사랑하라, 그러면 당신의 기업에 백배로 보답할 것이다.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사장으로 원칙주의자였던 사이러스 맥코믹은 '경영은 일종의 엄숙한 사랑'이라 했다. 그는 어려운 시절 함께 한 직원이 규정을 어기자 해고했다. 직원이 사장에게 인정 없는 사람이라 몰아붙이자 규정대로 처리했다고 말하며 그 사정을 물었다. 직원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최근에 아내가 아이 둘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아이 하나는 다리가 부러져 입원했고 또 다른 아이는 엄마 젖을 먹지 못해 계속 보채기만 해서 너무도 괴로워 술을 마시고 술기운으로 근심을 풀려다 그만 출근 시간에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맥코믹 사장은 깜짝 놀랐다. 당신에게 관심이 부족했다며 직원을 위로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 아이들을 돌보라며 살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 후 직원들은 맥코믹을 목숨 바쳐 일할 가치 있는 사장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기업인에게 사랑의 바람이 불길 바란다. 어우러진 세상의 풍경에서 슬픔이 사라지길 바란다. 바람아, 불어라. 태극기 휘날리고 초록 잎 반짝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