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수백 년 전, 한반도에서 화려한 고대문명의 꽃을 피우고, 세계사에 그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은 천년의 영화를 누렸던 신라는 결코 신화나 전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며, 엄연히 이 땅에 실존했던 명확한 우리의 역사이다. 그러나 잦은 외세의 침입을 피할 수 없었던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겠지만, 그간의 잦은 전화로 지상의 유적들이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 잔존하는 가시적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해방 이후 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주 재개발 의지에 의해 시작된 문화재 발굴 조사, 연구활동 등에 의해 안압지를 필두로 대능원, 황룡사지 등에서 그간 많은 수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당시 신라문화의 화려함과 그 우수성을 짐작케 하고 있다. 그 후 한동안 침체기를 걷던 경주는 최근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은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반월성 및 황룡사 복원 정비사업이 재개되기에 이르렀지만,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될 뿐만 아니라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유적 복원사업에 대한 진정성 시비와 함께 당 사업의 당위성이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즉, 신라왕경 중 옛 신라 왕궁터로 추정되는 월성과 황룡사를 복원하는 일만으로도 조 단위의 천문학적 예산 소요는 물론, 복원기간 또한 수 십년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는데 반해, 명확한 고증 자체가 불가한 상황에서 복원될 몇 개의 건물이 경주의 스카이라인을 좀 바꾸어 줄지는 모르지만, 현대공법으로 또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의 추정으로 복원된 건물들이 당연히 문화재로 인정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미래 관광자원으로써의 효용성도 현 시점에서 장담하기 어렵고, 또 거대한 목조건물에 대한 유지 보수 및 관리비용이 오히려 후손들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국토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더 넓은 황룡사지와 월성을 오직 잔디밭으로 방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찬성할 수 없지만, 나는 정계와 학계 그리고 경주시민들이 정말 합리적인 판단으로 의견을 모으기만 한다면, 그렇게도 막대한 예산과 장기간의 모험을 감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당지역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여기서 한 실례를 들어보면, '헤리포트' 라는 단 한 편의 판타지 영화 촬영지였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적인 유명관광지가 된 '크라이스트 처치', 또 단지 '세익스피어'의 탄생지라는 이유로 유명해진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븐' 그리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남이섬' 만 해도 무슨 유적이나 변변한 건물 하나 없는 내륙의 조그만 섬이었지만, 드라마 '겨울연가'가 한류를 타면서 지금은 대단히 유명한 관광지로 변모하여 지역에 막대한 관광수입을 안겨다 주고 있지 않은가? 즉, 지금과 같은 시각적 미디어가 부족하던 옛날의 관광은 주로 자기가 보지 못했던 어떤 대상에 대한 호기심 충족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과거와 달리 어떤 구경보다는 주로 체험하고 즐기는 관광이 대세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하드웨어보다는 스토리텔링을 가지는 소프트웨어 관광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인데, 경주야 말로 신라 천년 스토리텔링의 보고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빈약한 하드웨어 유물에만 의지하여 역사문화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해 지고 있고, 인구 감소, 관광수입 감소 등 지역경제가 그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볼 때, 경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따라서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백분의 일의 예산이라도, 천년의 이야기를 재구성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사업에 투자하여 경주를 세계에 알리는 길이 바로 '경주의 미래'라는 사실을 주지한 바 있지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수 십 년을 기다려도 미래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고 건축물을 흉내 낸 거대한 건물 몇 채가 아마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첨단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서라벌 디지털 복원은 현재 진행 중인 월정교 문루 하나 제작할 비용 정도로도, 무려 1,360 블록, 17만8,000호에 달하는 거대한 고대의 메가시티 서라벌이 입체적으로 가시화 될 뿐만 아니라 수 없이 많은 잠자고 있던 신라 천년의 스토리텔링을 부활시켜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오직 천 년 왕도의 높은 성벽에 둘러 쌓여 마음까지 가두어 놓은 채, 현재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월색 고요한 황성옛터에 앉아 신라의 달밤을 노래하여도 신라 천년의 영화는 가마득히 먼 과거의 전설로만 남게 될 것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