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오른 날, 경주는 36.4℃ 로 전국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더위를 식히려는 의도는 없었다. 키 큰 망초도 무더위에 지쳐 고개를 숙인 산길에서 손바닥으로 햇살을 가려보지만 금세 등줄기로 땀이 흥건해졌다. 그러다 한 뼘 그늘이라도 만나면 반갑고, 길 잃은 듯 불어오는 바람도 고마웠다. 그러나 정작 남산을 오르는 마음은 간절함 때문이다.  '노천박물관'이라 불리는 '南山'은 말 그대로 여기저기 신라 사람들의 흔적들로 충만하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란 대부분 부처님을 향한 신심의 조각들이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서라벌을 일컬어 '사사성장(寺寺星張) 탑탑안행(塔塔雁行)'이라 했던가. 일연의 표현처럼 절들은 하늘의 별처럼 총총히 세워지고, 탑들은 층층이 기러기 날 듯 줄지어 있는 곳이 남산이다.  60개 넘는 골짜기마다 절터와 불상, 탑, 석등, 연화대 등 700여 점의 불교문화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천 년 전 석공(石工)들의 간절한 기도와 땀 냄새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이다. 남산에 오르면 내 안의 간절함이 비로소 내 삶을 더욱 정성스럽게 보듬어준다.  이끼 낀 석불(石佛) 앞에 서면 쨍한 햇살처럼 눈부신 정(釘) 소리가 쟁쟁 들리는 듯하고,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석공들의 애절하고도 간절한 사연들이 천 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왜 그 단단하고도 거친 돌을 깎아 그리도 가녀리고 인자하며 부드러운 불상을 드러내고자 한 것일까? 진리를 그렇게도 깊고 단단히 봉인해버린 세력은 대체 어떤 신비를 그 속에 담아내고자 한 것일까? 아사녀의 그리운 얼굴을 뒤로한 채 정과 망치와 땀으로 보낸 아사달의 세월을 떠올리면 대체 그 간절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두려워진다. 신앙으로 피운 예술혼(藝術魂)이었을까? 아사달의 무영탑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분은 돌아가신 김영찬 석공예 명장(明匠)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 명장의 정 끝에서 '아사달 아사녀 사랑탑'이 태어나지 않았던가. 2006년 토함산 자락의 동리목월문학관 마당에 건립된 이 사랑탑 덕분에 이듬해부터는 해마다 '아사달추모제'가 거행되었다. 올해는 사랑탑이 태어난 지 십 년이 되어 더욱 성황리에 열렸는데, 이 자리는 또한 김 명장을 추모하는 유작전까지 열려서 천 년을 사이에 두고 석공의 삶을 살다 간 두 장인의 혼이 더욱 쟁쟁했다.  "돌의 속삭임을 들어보세요. 남들은 돌을 만지면 차다고 하는데 나는 돌이 따뜻합니다. 돌은 정직해요. 쪼는 대로 형상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말씀하던 김 명장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김 명장은 옛 석공들의 전통적인 작업방식을 고집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업은 단순했다. 오직 '정'과 '망치'로 두드리고 쪼았다. 수만 번의 정질 끝에 비로소 돌 속에 잠자던 형상이 드러나 숨을 쉬었다. 결코 같은 작품을 조각하지 않았고, 작업을 하다가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정과 망치를 내려놓은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겨울보리를 밟듯 웃자라는 마음을 꾹꾹 밟아야 했다.  보문선원에 조성한 미륵불은 옷자락 한 겹 한 겹이 연꽃이요 연잎이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열고자 그는 얼마나 간절한 정성을 품은 것일까? 아무리 평범한 돌도 그의 정이 닿으면 생명처럼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쉰넷, 아직 팔뚝에 힘줄이 돋고 빛나는 눈동자가 초롱하던 나이에 그는 우리들 곁을 떠났다. 어쩌면 자신의 간절함이 하도 절박하여 오히려 돌 속에 숨어버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 시인, 시비(詩碑)는 내 손으로 만들어야지" 그렇게 말씀하실 때 나는 좋아하기보다 오히려 좌불안석이었다. 그의 간절함을 담기엔 내 시의 그릇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잘 알았으므로. 그리고 지금, 안강읍에 있는 석경조각연구소엔 그의 미완성 작품들과 평생을 함께한 연장들만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아직 못 다 부른 사랑가를 이끼에 숨겨둔 채 잠들어버린 무영탑의 그림자처럼 그의 간절함도 그렇게 잠겨버린 것일까. 남산을 내려올 때 나는 돌탑에 돌 하나를 얹어두었다. "너를 조각하련다 너를 새기련다 /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 이 하늘 끝나는 날까지…" 그렇게 간절하게 다짐하던 어느 시인의 노래가 떠올랐고, 내 손에도 간절함이 엉겨 정성스런 소원 한 줌이 쥐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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