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金庾信) 장군!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이름인가. 역사는 구름처럼 강물처럼 흘러가도 영웅의 이름은 사람들의 가슴에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늘은 내 친구 월유 (신라문화동인)선생과 함께 '건천'에 있는 김유신 장군 설화가 전해 오는 신라 토성, '작성(鵲城)'을 찾아 나선다. 먼저 '건천' 읍내에 있는 '전(傳) 김유신 장군 기간지주(旗竿支柱)'를 찾는다. 전설에 맞춰 지어진 듯한 '작원(鵲院)'동이라는 이름의 동네 골목을 지나니, '전(傳) 김유신 장군 기간지주(旗竿支柱)' 안내판과 함께 낮은 '돌기둥' 하나, 잔디밭 가운데 솟아 있다. 아, 김유신 장군의 '기간지주' 구나. '기간지주' 안내문을 읽는다. 화강암으로 깎아 만든 이 지주는, 김유신 장군이 이곳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는 '작성'에서 백제군을 무찌르기 위해 많은 군사를 주둔 시키고 있을 때, 군대의 '깃발'을 달기위해 세운 것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다. 우리가 천 년 전 옛 사람들의 일을 어찌 생생히 알 수 있으랴. 그러나 지금은 눈앞에 그냥 황량한 풍경이지만 그 풍경 뒷면에 흐르는 옛 사람들의 감격과 고통과 슬픔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간지주' 앞에 서니, 천 몇 백 년 전, 드넓은 광야에서 '김유신 장군'의 위엄에 찬 목소리와 백제군 앞에서 '화랑(花郞)'들의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나는 잠시 짧은 환상에 젖으며,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실린 '작성(鵲城)'에 대한 설화를 떠 올린다. 이 성은 신라 때 왕경을 수비할 목적으로 쌓았던 토성(土城)이다. 주위는 4,340척(약 1.3km)이며, '작원성(鵲院城)' 또는 '작성'이라 하였다. 또한 세속에 전하기로는 김유신 장군이 대군을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러 이곳에 주둔하였다. 백제왕이 이 소리를 듣고 김유신 장군의 신이한 전략 때문에 크게 근심 하였다. 이에 공주가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에게도 용감한 군사와 병기가 있어 근심할 바 없으니 청컨대 가서 엿보고 오겠다"하고 '까치'로 변하여 신라군의 진중에 들어 가, 깃발위에 앉아 지저귀니 모든 신라 장군들이 상서롭지 않다고 여겼다. 이를 본 김유신 장군이 칼을 들어 가르킴에 까치가 땅에 떨어지면서 사람으로 변하였다. 백제의 공주였다. 그로 인하여 원을 세우고 이를 이름으로 하였다. 동경잡기 이문 조(東京雜記 異聞 條). 우리는 낯선 곳에 간다는 약간의 설레임 속에 동네 뒤쪽에 둘러 있는, 야트막한 산등성이, '작성(鵲城)' 산길로 들어섰다. 땀을 흘리며 산길을 올랐다. 그러나 녹음이 무성해서 옛 토성 흔적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성문지와 창고터, 건물터, 우물터가 분명 있을 것인데 숲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고 뜨거운 여름 햇살만이 가득하다. 산꼭대기 넓은 평원엔 논밭과 농가 한 채가 보였다. "아, 잎 진 가을이나 겨울날에 다시 와야지. 그때 '작성(鵲城)'은 그의 얼굴을 보여주겠지" 산 아래 입구를 지나는데, 동네 노인들, 그늘 좋은 곳에서 피서용, 고스톱이 한창이다. 마음씨 좋게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 한바가지를 주며 좀 쉬었다 가시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