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5월 21일/광주에 볼일 보러 가/영 돌아올 줄 몰랐지/마누라 이숙자가/아들딸 다섯 놔두고/찾으러 나섰지/전남대 병원/조선대 병원/상무관/도청/(중략)/그렇게 열흘을/넋 나간 채/넋 읽은 채/헤집고 다녔지/이윽고/광주교도소 암매장터/그 흙구덩이 속에서/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가슴 펑 뚫린 채/마흔살 되어 썩은 주검으로/거기 있었지' 시인 고은(83)선생의 장편 서사시 '만인보(萬人譜)'의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의 한 부분이다. 또 있다.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중략)/담양 촌구석 마누라가/살려고 버둥쳤다/광주 변두리/방 한 칸 얻었다/여섯 가구가/수도꼭지 하나로/살려고 버둥쳤다/여섯 가구가/수도꼭지하나로 물밥는집/(중략)남편 죽어간 세월/조금씩/조금씩 나아졌다/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막내놈 그놈은/펜싱 선수로/아시안 게임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 '만인보 단상 3355-이숙자' 편의 한 부분이다. 이미 다 알겠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고규석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의 최측근 고영태씨의 아버지, 이숙자는 어머니로 추정된다.  당연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걸고 돌아온 막내놈 그놈은 고영태로 추정된다. 고영태씨도 한 언론의 인터뷰에서 "(5·18 당시)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던 중 군인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찾아다닌 끝에 광주교도소 안에 버려져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결혼반지를 보고 찾았다"고 말한 바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민주화 항쟁으로 희생됐던 아버지의 아들이 이 시대에 와서 국정농단에 관련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네티즌들은 고영태씨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자신의 가족사가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고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핵심적인 증언을 할 수도 있다. 핏줄에 흐르는 결기가 발동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고씨의 심경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상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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