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마을 솔안각단 권순채는 조선 딱종이 같은 사람, 어릴 적부터 설핏한 눈으로 구름술패랭이 하고만 놀았다. 육십 평생 경주 땅 한 발짝도 떠나지 않은 농사꾼, 벼농사 보리농사 밀농사 콩농사 자식농사 틈틈이 고분발굴현장 잡역부로 떠돈다. 소형 오토바이 타고 내남면 홰나무거리, 술구름고개, 질매재, 아랫서, 나무백이, 새앙만디, 장자태, 봉화태, 복판등, 분등 물밤번디기, 장수미, 예수바우, 여심이, 느븐드리, 무지태, 자트락길, 부리나케 부르릉거리고 다닌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라 입말 주워다 공책 속에 채곡채곡 알곡 채우는 일, 그중 큰 농사로다" -박진형의 시 '신라 입말을 찾아서' 이 시의 주인공 권순채(1953~) 시인이 600쪽 분량의 두툼한 책 한 권을 내놓았다. 32년간 직접 발로 찾아 쓴 '토박이 마을의 땅이름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지난 1년간 농사지은 돈으로 준비한 책이란다. 책장을 넘기면 정겨운 단어들이 줄지어 있다. 경주말의 보물창고다. 1993년 '토박이 땅이름'을 시작으로 '박 추억속의 그리움', '풀꽃 나무들아', '농부와 수녀의 유별난 한글사랑' 등 벌써 아홉 번째 책이다. 권 시인은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둥굴마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이조리 갬디미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 제2회 전국농산물품평회에서 재래종 콩으로 특상을 받았고, 한국생약협회 표창을 수상할 정도로 모범 농사꾼이며, 동시에 신라문화동인회, 남경주문화연구회 등 '경주지킴이'로, 한글운동가로, 수필가와 시인으로도 활동한다. 그는 1985년부터 잊혀 가는 우리의 고유한 땅이름을 되새기는 작업을 해왔다. 내남면과 황남동의 동 이름, 동제, 전설, 방언, 나무 등과 문화유적 등을 조사 연구했다. "그런 짓을 하고 다니면 돈이 생기나 명예를 얻나" 하는 핀잔을 수없이 듣기도 하고, 수상한 사람 취급도 당했다. 땅이름의 유래를 성가시게 캐묻다가 말다툼을 하거나 욕을 얻어먹기도 부지기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조사에 나섰다가 도랑에 빠지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고, 개한테 물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책 내는 일이란 엄두도 못 내어 경부고속철도 공사장 막노동일과 공공근로, 문화 발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여 돈을 마련해 책을 내게 된 것이다. 남에게 바보 취급이나 받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지만 남이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더라도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책머리에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최고는 못되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탑을 쌓되 아름답고도 튼튼하게 영원히 무너지지 않게 쌓으며, 부지런히 일하면서 열심히 배우는 것을 꾸준히 하며, 무엇이든지 아끼고 보살피며, 선의로써 남을 돕고 살아가면서 후대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고자 노력하면서, 틈이 나는 대로 땅이름뿐 아니라 사라져가는 우리말과 전설, 나무 등 모든 풍속과 풍습들도 조사 연구해 볼 것이다" 그의 삶이 참 탄탄하고 아름답다. 고도근시라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불편한 몸이지만 지금도 전설집과 '내남면 문화재 지표조사집'을 발간할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이 약삭빠른 세상에 그는 순진하게 농사를 짓고 고향을 지키는 '등 굽은 소나무'처럼 보인다.  그는 또 2013년부터 매년 3월 첫째 일요일이면 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을 집필한 남산 용장사 터에서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붉은 매화가지 하나 꺾어 두고, 제문을 짓고, 제물을 준비하고 시를 읽는다. 모두 사비로 준비하는 금오신화제다. 올해도 삼월이면 어김없이 매월당에게 올릴 술을 빚고 있을 권 시인.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그는 지독한 토박이 사랑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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