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이념 편향적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방안, 즉 '블랙리스트'에 관한 보고를 받고 기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추진하라고 흔쾌히 지시했다'고도 한다. 특검이 밝힌 김 전 실장의 공소사실은 "이념 편향적인 것, 너무 정치적인 사업에 국민 세금이 지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체부 사업 중에 그런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내용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직후인 2013년 8월부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천안함 프로젝트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는 것은 종북세력의 의도며 이 영화의 제작자와 펀드 제공자는 용서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예술의 속성에 대해 공안검사 출신인 김 전 실장이 이해할 턱이 없다. 그리고 체제의 충직한 수호자로 나서며 50년을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그가 문화예술의 '본령'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문화예술은 사회의 온당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시니컬한 비판과 정의와 행복에 대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은 김대중 정부 이후 15년동안 종북세력이 문화예술계를 장악해 대한민국의 문화판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생각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화의 다양성과 자의성에 대해서도 몰지각한 판단을 한 것이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그 리스트에 의존해 이념 편향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언론·출판과 표현의 지유를 침해한 명백한 범죄혐의다.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겠다는 의도였고 정의를 부르짖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재갈을 물리겠다는 시도였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었던 대통령은 눈도 하나 안 깜박이며 모르는 사실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유정룡 전 장관이 두 차례나 항의했다는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의 핵심 권력자들이 저지른 악랄한 반민주적 행위다. 이상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