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는 평상심이 실종되고 목적 달성에 눈이 어두운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아전인수식 이기주의가 바탕에 깔린 포퓰리즘이 정상적인 판단력을 흔들면서 '선동(煽動)에 선동(煽動)'을 부르고 있기도 하다. 이 먼지바람은 가라앉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실로 안타깝다. 우리는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바깥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핵을 내세운 북한의 그칠 줄 모르는 발악, 중국의 기술 추격에다 안으로는 권력 장악을 겨냥한 편 가르기, 일본식 장기침체, 저출산과 고령화 등으로 어지럽다. 그런데도 대권 경쟁에 나선 후보들이 진정으로 나라의 장래를 위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권력을 잡기 위한 선동적 포퓰리즘에 혈안이 돼 있다. 공무원을 80만명이나 늘리고, 군 복무 기간을 줄이며, 전 국민에게 130만원씩 나눠주고, 서울대를 없애겠다는 등의 공약들이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여론 조사로 보면 대권 후보로 가장 유력한 한 정치인은 지금 우리나라에 친일 세력, 군부 독재 세력이 있어서 이들이 권력을 다 잡고 있으며 문제의 근원이라고 했다. 친일 독재 세력이 반공, 산업화 세력, 보수 정당으로 바뀌었다고도 했다. 이 말을 들여다보면 북의 김씨 왕조 두둔, 재벌 비난, 남 탓 타령이며 사실과도 전혀 맞지 않는 궤변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치에 맞지 않는 공약이 되레 인기도를 높이고 있으니 문제다. 더구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마저 이성을 잃고, 선동에 휘말려 집단 광기까지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많은 사람들이 근시안적인 이기주의에 빠지고, 정치인들은 이를 정치적 목적 달성에 활용하려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같이 온 나라가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으로 치닫는다면 국가의 앞날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인류사를 통해 보더라도 이 같은 분위기가 국가의 자멸을 부르지 않았던가. 윈스턴 처칠의 '정치란 전쟁 못잖게 사람들을 흥분시키며, 전쟁과 같이 위험하다'고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보통사람들의 감정을 끝없이 부추기는 우리의 정치문화는 바로 그런 갈등의 소용돌이를 증폭시키고 있어 디오니소스가 '나라를 멸망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동 정치가에게 권력을 맡기는 일'이라고 한 말도 생각난다. 선거를 앞두면 이런 고질병이 도지는 주요 원인은 우선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흠집을 내고 보자는 저의와 불리하면 일단 뒤흔들어 놓고 그 다음을 생각하자는 전략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그런 일들을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 선거전은 일정 기간만 필요로 하지만, 그 진실 캐기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게 바로 함정이라 할 수 있다. 폭로나 상대의 비방이 선거철의 단골 메뉴로 뜨고, 소기의 목적 달성용으로 사랑(?)받는 시대는 이제 청산돼야 한다. 이기려면 양심은 일단 팽개쳐 두고 가려진 진실을 그럴듯하게 왜곡 포장해서 퍼뜨리며, 의도했던 목적이 이뤄진 뒤에는 진실이 제대로 밝혀져도 물 건넌 뒤가 돼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거 풍토를 볼 때, 선동은 '한탕주의'의 효자였다. '거짓 진실'을 과감하게 터뜨린 다음 표 몰이를 한 뒤엔 문제가 되더라도 법적인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적잖이 걸리므로 책임은 미미해지곤 했다. 그러나 무책임한 폭로와 비방은 이제 지양돼야 한다. 선량한 사람들을 목적에 이용하는 악의적인 선동에는 그 대가도 치르도록 해야 한다. 훌륭한 정치는 정직하고 창조적인 국민을 전제로 한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배경에는 훌륭한 정치가 못잖게 창조적인 일에 집중하는 국민과 객관적이고 차분한 사회적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라 했다. 자연의 현상은 하나같이 모순?대립이라는 싸움이나 갈등에 의해 이루어지며, 궁극적으로 사랑과 화해를 지향하게 마련이다. 사랑과 화해로 나라가 바로서려면 선이 악을, 이성이 감성을 이겨야 한다. 눈앞의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지양되고, 진정한 정치철학이 비속한 정치 전략들을 물리칠 수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