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부부 싸움을 한 까닭은 탐식 때문이었다. 걸식 들린 듯 음식을 연신 퍼 넣는 아내의 모습에 야릇한 분노가 치밀었다. 처녀 적 섹시하게 보이던 도톰한 아내의 입술이 순간 미워 보였다.  어머니는 동양적인 미인이었는데 아내와 다르게 조그마한 입에 입술선이 가늘고 고왔다. 그의 앞에 마주 앉은 두 여자가 쌍둥이 자매처럼 나란히 입을 벌리며 숟가락을 바쁘게 놀렸다.  어머니는 수북이 얹은 물김치 건더기를 한껏 벌린 입 안에 넣고는 씹지도 않고 꿀컥 넘기더니 바쁘게 대구탕을 떠먹었다. '캑 캑'. 어머니가 얼굴을 붉히며 물을 들이키자 아내가 타박했다. "체하시겠어요, 좀 천천히 드세요". "네가 나보다 더 빨리 먹으면서, 너나 천천히 먹어라". "난 그래도 양이 적잖아요". "나도 요즘은 늙어서 많이 못 먹는다". "에이, 어머니는 그분께서 꺽, 기별하실 때까지 드시면서". 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둘 다 똑같아! 아 나 참, 누가 뺏어 먹나".  아내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먹은 것을 반납하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과식한 위를 가라앉히지 못해 툭하면 입원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수저를 탁, 놓고 주방을 나가버렸다. "어디 가요! 저 성질머리하고는". 뒤통수에 대고 반격하는 아내를 돌아본 그의 눈빛이 적의로 가득 찼다. 한두 숟가락 뜨고 남긴 그의 밥공기 앞에서 핥은 듯한 두 여자의 밥공기가 무색해 보였다. 그는 언짢은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패스트푸드점 앞에 서서 시계를 보자 친구와 만날 약속 시각이 너무 일렀다. 배가 허전했지만, 식욕이 가셔버린 그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폈다.  책장을 넘기다 형광펜으로 표시를 한 곳에 시선이 멎었다. 탐식의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 있는 지옥에 괴물 케르베로스가 그들을 물어뜯을 듯 울부짖었다. 세 개의 머리와 뱀의 꼬리와 갈기를 가진 괴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죄인들의 영혼을 할퀴고 찢고 갈기갈기 뜯는다고 적혀있다. 목구멍의 죄 때문이었다.  그는 죄 같지도 않은 탐식이 죄의 뿌리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오만과 질투와 탐욕의 세 불꽃이 인간의 마음을 불태우는 죄의 불꽃이라 했다. 아내와 어머니에게 느끼는 야릇한 기분은 오만을 동반한 일종의 경멸감이었다. 누가 누구를 경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심한 죄책감을 느꼈는데 목구멍의 죄를 읽고 나자 죄의식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책갈피를 꽂아둔 페이지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알리기에리의 신곡, 지옥 편 6곡에서 나왔던 탐식의 죄에 대한 내용이 연옥편 23곡에서 다시 나왔다. 그만큼 탐식의 죄가 무겁다는 말인가. 그는 늪 속에 빠지듯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책 속에 몰입했다. 행간 사이로 해골처럼 바짝 마른 영혼들이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눈구멍은 보석이 빠진 반지 같았고 깡마른 얼굴은 OMO(좌우의 두 눈은 O, M은 코와 눈썹 언저리)였다. 세상에서 지나치게 목구멍의 즐거움을 쫓은 대가였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열망으로 책에 밑줄을 그었다. 그때 한 여인이 들어와 차갑게 쏘아붙였다. "여기서 공부하면 안 돼요! 남의 가게에서!". 그는 어리벙벙해져서 "금방 갑니다" 하고 대꾸했다. 여기서 책을 읽는 게 그리 잘못한 일인가? 가라앉으려던 화가 다시 은근히 끓기 시작했다. 그는 사나워지려는 마음을 추스르려고 다시 책을 들었는데 그때 구약의 사사기를 인용한 문장이 나왔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칠 때 여호와가 명령했다. 물을 마시는 자세를 보고 병사를 뽑아라. 땅에 무릎을 꿇고 강물에 입을 박고 마구 들이키는 자들은 돌려보내라. 부드러운 바람 한 줄기가 혈관을 타고 고요히 흘러내렸다. 두 손을 옹그려 떤 강물을 기품 있게 마시는 병사의 모습이 그려지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가 여인을 향해 웃어 보이자 여인이 다가와 "무슨 공부 해요?" 물었다. 아까와는 다른 상냥한 말씨였다. 그는 대답 대신 활짝 웃음 지었다. 출입문으로 나가는 여인의 등을 바라보는데 아내와 어머니의 당황해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까도 웃으며 말했어야 했는데… 그의 입가에 뜨거운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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