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차를 좋아하기에 차를 위한 길을 간다는 것은 15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자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기회라 생각했다. 길(道)에서 도(道)를 깨우치기를 바라는 게으름의 소치이자 설레임의 시작이었다. '차마고도(茶馬古道)' 여행은 차에 의한, 차를 위한 길이다. 티베트인들에게는 차는 피며 생명이다. 중국 운남, 사천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약 5,000km의 문명교역로 차마고도 그 시작은 중국 당나라와 티베트 토번왕국이 차와 말을 교역하던 역사에서 비롯한다.  사천성 야안의 승려 오리진(吳理眞)선사가 7그루의 차나무를 심어 중원의 황제에게 차를 바치기 시작한 이후 당나라 때부터 황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차는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다. 이후 차는 비단과 함께 중국의 가장 귀한 수출품이 되었다. 장족 전래시에서 보면 차 값이 얼마나 비싼지 알 수가 있다. 군사력에 있어 당나라와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던 토번 왕국은 수시로 당의 변경을 침략하여 당나라 왕실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하였다. 이를 견디다 못한 당 태종은 서기 641년 문성공주를 토번 왕 송첸캄포에게 출가시키는데 이때 문성공주와 함께 불교, 그리고 차가 토번 왕국으로 전파되었다.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불모의 초원에서 차는 유목민들이 비타민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당나라 이후 중원의 제국들은 북방 유목민족과 싸우기 위해 티베트의 강인한 말이 반드시 필요했고 토번왕국은 생존을 위해 차를 필요로 했다. 차와 말의 교역(易茶易馬은) 급속히 번성했고 수 천년을 이어 오면서 문명과 문명을 잇는 길이 만들어 졌다.  이렇듯 생명과 정치적인 목적으로 차마고도는 생겼다. 실크로드보다 200년가량 앞서 형성되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험난하고,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1,5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차의 길을 더듬는 것, 그 시작은 쓰촨성, 청두에서 시작되어 '샹그리라'로 이어졌다. 샹그리라는 티베트어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다. 3,500m의 고도에서 해와 달을 보는 것은 어려우리라. 이렇듯 날씨의 시련은 차 맛을 익히고 사람들에게 해와 달의 소중함을 알게 했을 것이다.  차마고도의 옛길을 말을 타며 걷는 동안 비가 내렸다. 생차가 숙차가 되듯 나도 좀 더 성숙하고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듯 고난과 시련은 차맛을 깊게 하고 향기를 좋게 한 것이다. 그리고 끝날 무렵 눈부신 햇살이 옥룡설산의 모습을 살짝 보여주었다. 내 마음의 해와 달이 옥룡설산을 비추는 듯 했다. 거기에서 나는 다산 선생을 떠올렸다. 선생은 언제나 차를 청했다. 그렇듯 나 역시 차를 찾는다. 한방에서 차는 향약(鄕藥)으로 활용해왔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의서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차가 등장한다는 것은 13세기 이전부터 차를 의학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도 고차(苦茶)를 향약으로 기록하고 있다. 차(茶)는 한약 처방의 구성약재로 급성설사, 황달, 소아경련 등에 사용되었다 한다. 또 차는 쓴맛이 필요할 경우 사용했다. 구토 치료, 잇몸출혈 외용제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이렇듯 차는 약이면서 역사이며, 현재가 되었다. 그 차의 시작을 보고나니 주위에 차 향기가 그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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