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직이든 사조직이든 조직 내 인사관리 작용을 시간적 차원에서 볼 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시작할 때, 만날 때, 얻었을 때 또는 기쁠 때의 인사보다 '마칠 때', '떠날 때', '잃었을 때' 또는 '슬플 때'의 인사가 더 중요하다. 또한 인사에는 주로 '얻는 자'와 '잃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어떤 인사가 시행된 뒤의 '사후설명'은 그 인사의 불가피성에 대한 논리적 해명을 넘어 '잃은 자의 아픔'에 대한 하나의 치유가 되는 것이며 나아가 조직 내에 쌓여있거나 쌓일 수 있는 오해의 소통작용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무언가를 성취한 측면보다는 상실한 측면에 대한 배려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비단 인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그 처리한 후의 '사후관리'는 고객에 대한 설명이라는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절차에 해당된다. 그런데 인사 처리에 있어서는 흔히 인사란 본래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는 명제에 안주해 불만도 감내해야 한다는 또는 일부 미안하다는 생각으로 '잃은 자'에 대한 '사후설명'이 없거나 간단한 위로 정도로 마무리되고 만다. 따뜻한 가슴에서는 아니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자상하게 그것도 개별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더 좋다. '잃은 자에 대한 사후설명'은 얻은 자의 고마움 보다 더 고마운 추억이 될 수도 있다.  필자가 공직자 기강업무를 담당할 때의 일이다. 당시 중앙부처 A부 소속으로 모처에 파견 근무 중이던 K국장에 대해 문책 처리를 할 일이 생겼다.  경위를 조사한 결과 실체적 진실의 차원에서 그 자신의 잘못이 미미한 사안임에도 혼자서 짊어진 점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절차적 차원에서 일단 그가 문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듯이 묘하게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리 엄중하게 보더라도 개인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어 인간적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기강 행정관이 당사자를 찾아가 해명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며칠 후 조용히 찾아가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도와주지 못해 진정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5년여의 세월이 흘러 옛날 일들이 기억도 분명하지 아니한 때 필자가 지방 자치단체에 근무하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부처에 아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마침 A부의 도움을 받을 꽤 어려운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조직도를 확인해 보니 그 K국장이 복귀하여 실장급이 되어 있었다. 출장 팀장에게 가게 되면 그에게 들러 혹 기억은 못할지도 모르나 안부나 전해라고 했다.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온 출장자들이 뛰듯이 들어왔다. 전언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날 밤 그 출장 팀장은 필자를 업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 일은 결국 성사되었다.  그 후 또 몇 년이 흘러 이제는 공직에서 퇴직한 K를 다른 일로 만났다. 그는 그 옛날에 억울하게 상처 입었지만 직접 찾아와 말해 준 것이 그렇게 고마왔다는 것이다. 늘 가슴에 갖고 있던 중 출장자들이 와 안부를 전할 때 그 고마움에 보답할 기회는 이 때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승진·전보 등 인사를 시행한 후에 뜻대로 잘 안된 직원들에 대한 자상한 설명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B부 소속의 인사실무 총책임자로 막 갔을 때 일이다. 부내 전보(자리이동)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해서 집행했다. 그로 인해 전보 희망했으나 성사되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 있었고 또 인사란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총괄과장으로 하여금 간단하게라도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위로하도록 했다. 전혀 예상외의 반응이 내부 대화방에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사되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이 많았으나 개인별로 설명을 듣고 나자 불만이 사라졌다는 것이며, 모든 간부들이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이 또한 '잃은 자에 대한 '사후인사'로서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를 낳은 하나의 칭찬 사례이다. 바쁜 일상에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사후 인사'는 이처럼 중요하다. 뿌린 씨앗은 잊어지더라도 언젠가는 열매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일이 안되었을 때 실패했을 때일수록 사후인사는 더욱 긴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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