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길의 시 '한(恨)'은 처음 두 연을 이렇게 전개한다. 꿈이 바랜 숲 속을 서성거리면 어디선가 파도소리 아우성 소리가 밀려온다 모든 것이 숨을 죽인 차가운 계절 바람처럼 울어라 나의 엘레지. 이 시를 읽으면 평론가들이 왜 그토록 정 시인의 시를 향해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는지 알 것 같다. "언제나 그는 마치 조개가 게를 품듯 모든 것을 그의 표정의 깊숙한 곳에 끌어넣고 남몰래 홀로의 몸으로 씹어 삼키는 것이다. 늘 나지막하고 고즈넉하게 스스로의 그늘에 숨은 듯 앉아서 시름을 달래는 언어의 수예(手藝), 국민이고자 떠들지도 않고, 시인이고자 나선 일도 없는, 스스로만의 시인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척할 수 없고, 척하지 못하는, 오직 스스로의 진솔성. 정연길에 있어 시는 바로 그러한 진솔성의 유일한 가능성일 것이다"(원형갑 평론가) "정 시인은 매명(賣名)과 매문(賣文)을 도외시하고 오직 문학과 학문의 본도만을 걷고 있는 의로운 시인이다. 그저 소박하면서도 고고한 시경을 느낄 뿐이다. 그의 시에는 심오한 아취가 풍기고 인간정신의 영혼을 승화시키는 그윽한 숲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전규태 시인) 우리는 한 시대, 또는 한 사회에서 시인이 존재해야 하는 까닭이나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시인이란 존재를 통해 그 시대와 사회가 누리는 유익을 또 생각해 본다. 아마도 우리의 생각이 닿는 그 끄트머리 어딘가에서 정 시인을 향한 찬사가 맞닥뜨릴지 모른다. 모름지기 시인이란 아무런 '척'도 할 수 없을 만큼 진솔해야 하며, 그윽한 숲처럼 고고해야 한다고. 하여 '모든 것이 숨을 죽인 차가운 계절에도 바람처럼 울어야' 하는 존재가 시인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이토록 어둡고도 절망적이라면, 아마도 그 원인 중 많은 부분은 그런 시인이 우리 곁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안강읍 양월리가 고향인 정연길 시인(1928~1999)은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안강중학교와 영천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뒤 1960년부터 서울시립농대와 한성대 국문과에서 교수로 가르쳤다. 나중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김해석 시인과 김기조 전 경주문화원장 등과는 경주중학교 5회 동기인데, 혹독한 일제강점기인 그 시절에 일찍 죽은 어머니를 그리는 사춘기 소년의 맑은 시재(詩才)를 발현하여 주목을 받았다. 1955년 '청맥'지에 '소녀상'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한때 전북 군산에 머물면서 '토요동인회'의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하다가, 경주에 와서 청마 유치환과 함께 경주 현대문학의 산실이라 할 만한 '청맥' 동인으로 활동했다. 말년에는 '화백'이라는 계간 문예지를 창간하여 화백문학회를 주도하기도 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경주 출신의 문인들이었다. 그만큼 "그의 시에는 경주의 산그늘이 배어 있었고 경주인의 음성이 박혀 있었다."(서영수 시인) 향토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따뜻한 인간미가 담긴 시를 썼다. 그는 "서라벌 하늘과 땅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러고 보면 제가 태어나 자란 땅의 온기를 보듬어 시어로 삼는 일은 시인이 지녀야 할 숙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바람 분다 오요 강아지 아롱진 눈물을 어찌하라냐 아릿한 삶의 길 한도 병이라 굽어진 안설움 달래줄꺼냐 섧지 않은 노래 불러 볼까나 멍멍 울지 않는 오요 강아지 지난 2003년 안강제일초등학교는 개교 80주년을 맞아 교정에 정 시인의 시비를 세우고 시 '오요 강아지'를 새겼다. '오요 강아지'는 '산책' '소녀를 위하여' 등의 시와 함께 작곡가 이흥렬 선생이 곡을 붙인 동요로도 불렸다. "봉긋봉긋 꽃망울을 머금은 산수유처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톡톡 터진다. 그래, 아이들아 부디 피어 함빡 웃어라. 그 웃음으로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바람처럼 울어다오. 언젠가 만물이 숨을 죽인 차가운 계절이 오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