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란 녀석은 보채는 아이같다. 자꾸 차(茶)를 달라한다. 차를 마시는 동안만큼은 내 시간과 마음을 차에게 모두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차마고도'로 떠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나의 몸에게 주는 사치의 시간, 차를 달라는 몸에게 답을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옛 차마고도의 길에 서서 나는 말에 올랐다. 조용히 말에 오르고 길에다 몸을 맡기자 나는 이미 말과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눈을 돌리면 내가 산길을 걷는 것인지, 하늘을 걷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옛 마방들의 마음을 헤아릴 사이도 없이 변화무쌍한 산 속의 날씨에 먼저 마음이 놀라고 말았다. 천둥이 치더니 어느새 숙명처럼 비가 내리고, 나는 조용히 비를 맞아야만 했다. 스러져 간 옛 마방의 영혼들이 그저 가라, 생각 없이 가라며 나를 떠미는 듯 묵묵히 길을 가야 했다. 그렇게 생차는 숙차가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고, 그 길에 서서 나 또한 성숙한 향기를 갖고 싶었다. 어느새 '리장'에 다다랐다. 리장 여행은 길에서 시작에서 길에서 끝났다. 리장 고성과 속하촌은 목덜미를 간질이듯 흐르는 수로와 반질반질한 돌길, 길과 길을 이어주는 아기자기한 다리가 제일 먼저 여행자를 맞았다. 누군가 닦고 또 닦아 놓은 듯 때로는 그 길이 눈부시게 보이는 건, 그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이야기가 형식을 갖춘 채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장예모의 '인상리장' 공연이다. 옥룡설산이 뒷 배경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장엄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펼쳐지는 나시족들의 이야기는 꽤 진지하고 아름다웠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색감이었다. 옥룡설산의 흰 빛과 차마고도를 형상화한 붉은 빛, 그리고 여러 종족들의 전통의상이 가진 오묘한 빛이 어울린 무대는 차 색을 닮아 있었다. 보이차의 붉은 빛과 동방미인차의 누런 빛, 그리고 남나백호차의 흰 빛. 나는 '인상리장'을 보며 역시 차를 떠올렸다. 다시 리장 사방가에 이르러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수로와 돌길,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지, 내가 어디에서 왔던 것인지 잠시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아가 되었건만 그래도 찻집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또 그곳을 들어가고 있었다. 차를 맛 보고, 차 파는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리장에서도 차는 언제나 여행의 마지막이 되어주었다. 그들에게 차는 일상이며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이렇듯 동의보감에서도 차는 약물과 함께 환이나 산제와 함께 복용하는 용도로 많이 활용했다. 즉 차는 약이었다. 지금은 건강에 좋은 식품이면서 기호품이지만 고려시대 이전부터 두통과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뛰어난 약재로 다양한 적용증을 가진 치료약재였다. 요즘은 많은 연구 결과 차는 다양한 화학성분의 복합체로 폴리페놀, 카페인, 당류, 비타민, 아미노산 등이 황산화, 암, 당뇨, 심혈관질환에 도움을 준다고 밝혀져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려고 노력한다. 여행길에서 돌아와 툇마루에 앉았다. 몽정산에서 사 온 황아차를 끓였다. 물에 퉁퉁 불어 오르는 차 맛의 첫 맛은 여리지만 긴 여운이 입안을 감돌았다. 왜 다산이 걸명을 해야 했는지, 나는 또 왜 걸명을 하며 차마고도까지 다녀왔는지 알 수 있었다. 혜장스님에게 차를 구걸한 다산의 마음은 차 맛에만 있지 않고 혜장스님과의 오랜 인연에서 차 맛이 우러나듯 차마고도를 같이 간 일행들의 감동 또한 차 맛에 더해진다. 집 앞마당의 풍경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샹그리라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