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순전히 딸 때문에 시작됐다. 대구에서 태어나서 그곳 대학을 다녔고, 대구사람과 결혼을 했다. 직장도 대구에 있었고 큰아들도 그곳 대학을 다녀서 대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딸아이가 경주동국대 한의대를 입학하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주말마다 한보따리씩 음식을 해서 경주로 왔다. 원래 엄마와 딸의 관계란 남다른 법이다. 나 역시 딸아이와 함께 하고 싶어 경주시보건소장 자리를 응모했다. 운도 따랐다. 행정에는 일자무식인 내가 4급 공무원이 된 사실을 가족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고, 호스피스의사였다. 호스피스란 말기암환자의 통증을 조절해서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돌봐주는 일을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경험해야하는 슬픈 공간이기도 하다. 내 어머니도 내가 근무하던 곳에서 폐암으로 떠났다. 병의 완치가 아니라 죽음을 돌보는 호스피스는 의학보다는 오히려 인문학에 가깝다.  일의 특성상 병원의 수익을 올리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싸늘한 병원 행정가에게는 눈의 가시 같은 애물단지였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도 상처를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수익보다는 국민의 건강을 우선으로 하는 공공의료기관에서 행정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소원대로 2017년 1월 1일, 경주시 보건소장이 됐다. 광역시의 구마다 있는 보건소와는 달리 경주시의 단 한 개 있는 보건소는 그 규모부터가 남달랐다. 24명의 공보의에 직원이 189명이다. 행정이라는 작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한 경주시보건소장은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었다. 일이 많아서 내가 받은 행정의 상처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더군다나 의사와 공무원은 다른 점도 많았다.  첫째는 복장이다. 공무원은 흰 가운대신에 검정색 양복을 입는다. 여자들은 가슴 왼쪽에 예쁜 브로치를 달기도 한다. 호스피스의사는 일할 때 오히려 검은 옷은 금기다. 죽어가는 환자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 늘어진 환자는 세련된 검은 옷을 빼어 입고 오는 방문객을 저승사자로 오해한다. 그래서 호스피스의사로 근무할 때 밝은 옷을 입고 진료를 했다. 하지만 공무원은 평소에는 물론이고 조직이 모일 때는 거의가 점잖은 검정색이다. 나는 공무원을 잘하고 싶어서 검정색 옷을 따로 샀다.  둘째는 호칭이다. 의사로 근무 할 때는 동료 의사를 선생님, 원장님이라고 부르면 그만이었다.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서열이다. 팀장, 과장, 국장을 잘못 부르면 굉장히 실례를 하는 것이다. 선생님이라고는 잘 부르지 않는다. 환자에게조차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입에 베인 나는 그것도 스트레스였다. 처음 만나는 공무원의 얼굴과 이름도 생소한데 그 뒤의 호칭까지 외우자니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셋째는 성격이다. 참고로 이 대목은 의사를 폄하 하려고 의도는 절대로 아니다. 의사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다.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교수의 사이가 소원하다면 그 밑의 레지던트는 괜히 일하면서 눈치를 본다. 하지만 공무원은 유대관계가 나쁘거나 성격이 모난 사람은 절대로 높은 자리에 올라 갈 수가 없다.  좋은 공무원과 좋은 의사를 만드는 것은 행정의 경험이 많은 것과 의학의 서적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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