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분석하여 평가함이다. 그러나 '비방'은 헐뜯음이며 공격이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가려주지만, 비방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비판은 논리적이지만 비방에는 논리가 없다. 그런데 비판을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의가 실종되고, 비판을 피하는 사람들 때문에 악(惡)이 성장한다. 나 같은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야 소주잔이나 기우리며 술안주 삼아 사회 불만을 털어 놔 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지식인 오피니언(opinion leader)들은 다 어디 있으며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권력에 아부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자들과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자도 있다. 중딩이도 웃고 갈 궤변이나 늘어놓고 있는 자들의 몰지성(沒知性)을 보며, 내 살아온 연륜마저 함께 민망스러워 진다. 독일인들은 단 두 사람만 모여도 항상 '토론'과 '비판'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들도 한 때 나치즘이라는 극우 민족우월주의 광풍에 휩싸여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 끔찍한 전범(戰犯)국가가 된다.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되던 비슷한 시기에 독일은 전 국토가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에서 패전하여 나라가 동서(東西)로 양분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후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을 통해 양분된 국가를 다시 통일하고 유럽의 강국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2차 대전과 6·25전쟁의 상흔(傷痕)으로만 비교하자면, 그들과 우리가 큰 차이가 없다.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분단을 극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시금 유럽의 강국이 된 비결은 어디에 있고 또 우리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들은 결코 라인강의 기적(奇蹟)에 자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처럼 대립되는 동서(東西)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토론과 건전한 비판정신으로 이념 편향을 제어하여 평화적 통일을 성공시켰다. 거기에 비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어떤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이성적(非理性的)인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동족이 북쪽에 자리해 있다. 남쪽은 남쪽대로 몰지각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지배계층에 자리하여 기득권을 지키며 남북 갈등뿐만 아니라 남남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비판은 사라지고 비방만 난무하여 궤변이 토론을 지배하고, 비지성(非知性)이 지성을 성토(聲討)하며, 불의가 정의를 단죄(斷罪)하려 든다. 세계 정복을 꿈꾸던 제 3제국과 그에 맞선 연합국의 전쟁에 참전했던 한 미국 병사의 절규가 갑자기 생각난다. "신은 누구의 편입니까 !" 그런데 내가 보기에 신(神)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인간들의 문제는 인간들이 해결하라는 것이 신의 뜻으로 보이고, 신은 다만 인간의 마음속에 이성(理性)을 심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동물은 본능의 지배하에 있고, 인간의 행동은 이성의 지배하에 있다. 고로 비판은 인간만이 지닌 이성의 산물이며 우리는 비판과 토론을 통해 천부(天賦)의 이성을 다시 업그레이드시킨다. 따라서 비판과 비방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 할 것이다.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은 주관적인 분별의 대상이 아니며 원래 그대로이다. 인간의 주관적인 논리로 바꿀 수 있는 진리는 아무것도 없으며, 인성(人性)의 위대함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바로 볼 수 있는 지성(知性)에 있다 할 것이다. 다만 빛의 파동을 감지하는 눈(目), 혹은 공기의 진동을 감지하는 귀(耳)라는 센서(sensor)로 진리를 분별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한 혜안(慧眼)으로 원래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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