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는 말이 있고, '팥을 콩이라 해도 곧이 듣는다'는 말도 있다. 이 두 속담은 반대되는 말 같지만 기실은 같은 궤에 놓이는 말이다. 전자는 불신의 소산이며, 후자는 남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이 두 속담을 두고 생각해보면, 후자에 마음이 더 가닿는 건 '왜' 일까. 전자는 우리 사회가 거짓말에 심각하게 오염돼 '구제불능'이라는 절망감을 안고 있다. 이에 견주어 후자의 경우는 '그런 사람은 바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에도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는 틈을 보여주며, 어디까지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지만, 절대로 속지 않겠다는 마음보다 더러는 속아주는 마음이 훨씬 인간적임도 말할 필요가 없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므로 그런 믿음을 갖는다면 더러는 속거나 속아주는 사람들도 끝까지 속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언젠가 한 음식점에 들어가면서 꽃병에 꽂혀 앙증스럽게 눈길을 끄는 한 송이 장미를 보았다. 마음속으로 '참 잘도 만들었군' 하면서 만져보았다. 그런데 가짜 꽃이 아니었다. 순간, 진짜 꽃을 가짜로 본 자신이 부끄러웠다. 진짜를 보면서도 '진짜로 보이는 가짜'로 여긴 자신이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가짜들이 진짜처럼 행세하거나 심지어 가짜들이 진짜를 밀어내는 세상이기 때문에 생긴 불신증이라는 '자기 위안'을 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참 한심하구나'라는 자괴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금 세상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로 보이고, 진짜가 가짜들에 떠밀려 가짜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가짜와 진짜를 바로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런 징후가 '나'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혹시 우리 사회 구조가 요즘 가짜를 진짜로 믿도록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나아가 이런 풍토가 진짜를 가짜처럼 변두리로 밀어내고, 가짜들이 진짜들의 자리를 버젓이 차지해 '진짜 같은 가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우려되는 점은 불행하게도 그 이상이라는 데까지 미치게 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미 오래전에 어떤 학자가 지적했듯이, 문제의 심각성은 '가짜의 횡포' 그 자체도 그렇지만, 그 횡포를 빈번히 겪은 결과 우리의 '사고방식마저 왜곡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우려에 닿게 된다. 말하자면, 가짜에 대한 경계심이 정상적인 자위책을 능가해 이상심리로까지 발전할까 걱정된다는 얘기다.  근래의 방송이나 신문 지상을 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지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보도가 미덕인 언론이 과연 그런 미덕에 충실하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은 것은 '가짜 사실'이 '진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지금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의 편에 서 있는지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팥을 콩이라 해도 곧이 듣는다'는 여유를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진실과 더욱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가짜에 속던 사람들이 점차 진짜 쪽에 귀를 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무겁다고 한다.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억눌린 양심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튼 가짜는 가짜이고, 진짜는 진짜다.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고, 그 때문에 진짜가 가짜에 밀리는 사회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진짜를 보면서도 '진짜로 보이는 가짜'로 여기는 불신증도 치유돼야겠지만, 가짜이면서 '진짜를 밀어내는 가짜 진짜'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행여 우리 사회 구조가 가짜를 진짜로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면 기필코 달라져야만 한다. '팥을 콩이라 해도 곧이 듣는다'는 조롱을 받던 사람들의 소박한 믿음이 진짜만 진짜인 믿음으로 굳어지는 믿음의 사회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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