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대선이 있고 내년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다. 대선주자들은 너나없이 지방에 대한 공약을 걸고 지지를 호소한다. 개발 사업을 제시하고 지방재정 확충과 지방분권 등을 약속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그렇게 하면서 서서히 발전되어 왔다. 지난 1995년 민선자치제도가 실시된 이래 이제 22년이 흘렀다. 돌이켜 보면 지방자치를 통해 지역발전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등 자치능력이 크게 향상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지방정부의 현실은 좋은 평가를 받기에는 아직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필자가 인천광역시에 잠시 있으면서 보고 느낀 몇 가지가 있다. 인천은 2007년 까지 만해도 중앙정부로부터 교부금을 받지 않는 '불교부' 단체였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교부단체'로 전락하게 된다. 이어서 재정 위기관리단체로 지정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첫째, 무책임한 개발 리더십이었다고 본다. 당시 부동산경기 열풍에 편승한 대단위 개발사업(도화, 검단지구 등)과 아시안 게임 주경기장 건설, 지하철2호선 건설 등 재정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투자가 도화선이 된 것이다. 둘째는 지방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이 중앙정부 보다는 훨씬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날카롭게 통제할 만한 전문성이나 동기유인이 부족해보였다. '예산나눠먹기'가 관례인 상황에서 감독기능은 더더욱 작동하기 어려운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한편 '언론'도 유착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많은 예산이 행사 등의 명목으로 언론에 지원되어 지방언론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칼날이 무뎌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셋째는 여전히 지방재정이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만큼 분권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지방재정의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요인은 중앙정부가 결정한 복지제도의 시행을 들 수 있다. 기초연금이나 영유아보육 등 대규모 재정을 수반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많은 부분을 지방정부에서도 부담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방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지방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의 낮은 혁신의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4년마다 줄서기를 한다. 일의 성과나 능력보다는 다음 리더십이 누가되느냐에 훨씬 관심이 많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래서 기초단체장 만이라도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지방정부를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지방분권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필요조건이다. 앞으로 헌법 개정과정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오늘은 혁신적 사고에 중점을 두어 얘기하고자 한다. 먼저 큰 생각(Big thinking)을 하라는 것이다. 13세기 북방의 몽골족은 세계를 제패했다. 17세기 1,600 만 명의 네덜란드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기원전 스파르타는 300명의 전사가 100 만 명의 페르시아 대군과 대적하는 용기를 가졌었다. 19세기 요시다 쇼인은 오늘날 일본 보수 우익의 원조이다. 우리에게는 원수로 여겨지지만 그 당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큰 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큰 그림과 큰 꿈은 훗날 명치유신(明治維新)의 기틀이 되었다. 인천에서 필자는 인천을 뉴욕을 능가하는 도시로 만들자는 프로젝트('Beyond New York')를 제시했다. 말로만 하는 구상이 아니었다. 사람, 돈, 문화수준이 글로벌화 되는 그런 도시의 밑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창조적 사고(Creative thinking)를 하자는 것이다. 일본 닛신 식품의 회장이었던 안도 모모후쿠는 라면으로 세계를 제패한 인물이다. 언젠가 요코하마에 있는 라면박물관에 들렀다가 그가 얘기하는 '창조적 아이디어 6개 상자'에 깊은 공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 아직 없는 것, 모든 것이 힌트, 아이디어 육성, 상하좌우에서 보는 습관, 상식초월, 포기는 없다. 2007년 타계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열정이 그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떤 프레임에서 벗어나 큰 생각, 창조적 생각으로 혁신해 나간다면 아마도 지금과 확연히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이쯤해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생각난다.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는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비행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이다. 비상하는 꿈. 따돌림과 추방 속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이루어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성취와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평범한 진리를 지방정부에 계신 분들과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