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나라는 중국 본토지역에 존재했던 역대 왕조 가운데 가장 큰 정치적 실체였다. 청은 1644년에 멸망했던 명나라 보다 영토는 2배 이상 커졌고, 인구는 3배 이상 많았다.  지금의 중국도 청조가 가졌던 영토를 계승했던 것이다. 전성기인 18세기의 청은 세계 최강의 국가였다. 그러한 청이 그 후 100년도 지나지 않아 멸망의 길에 들어섰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청의 역사를 두고 많은 세계적 학자들이 나름대로 이론을 펼치고 있지만 지배적인 학설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청의 멸망원인으로 분명히 드러난 것은 인구증가와 생산성저하였지만 여기에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은 왕조의 오만과 부패였다. 그것이 안보외교의 실패와 내정의 파탄을 불러온 것이다. 세계1위국가의 몰락은 그렇게 허망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몰락한 청조의 피폐한 유산위에 공산혁명으로 이룩한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탄생보다 1년이 늦었지만 동서냉전과 쏘련의 지원으로 대국의 위상만은 유지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전까지는 왕조시대의 후진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30여년 만에 국내총생산규모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그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동구권(東歐圈)몰락으로 공산권국가의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은 현재의 영토와 그 영토가 가진 자원,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나라로서 세계의 석학들은 벌써부터 세계1위국가가 될 가능성을 점쳐왔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볼 때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을까? 쏘련방 처럼 해체되는 비운을 맞지는 않았을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세상이 알다시피 박정희 개발모델을 벤처마킹했다지 않는가? 개방 당시 중국의 부족한 기술력은 한국이 기술이전으로 메워줬고 자본부족은 한국의 투자로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그래서 중국과 국교를 열었던 초기, 중국인들은 과공(過恭)이라 할 만큼 한국인을 환대했지 않은가? 지금도 중국의 수출품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한국산 가공품이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중국이 조금 먹고살만해졌을 때 시작한 것이 우리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시대의 지도자들도 우리역사로 인정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고대국가를 중국의 지방 국가로 편입하는 역사날조를 감행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과 핵, 화학무기의 방어책으로 한미동맹에 따라 우리 땅에 배치하려는 사드를 강력히 반대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주권과 자위권에 대한 심각한 간섭을 하고 있다. 한국관광상품판매금지, 상품불매운동, 롯데마트영업정지등 전방위 보복을 자행하는 한편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언론매체를 통해 반한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반면 유엔안보리결의를 위반한 북한이 한꺼번에 여러 발의 미사일을 쏘아 올려도 미온적으로만 반대하는 등 실질적으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의 속셈은 한국으로부터 많은 이득을 보면서도 한국을 속국처럼 대하고 북한의 비대칭무력 앞에 무릅을 꿀리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대국이라 자처하는 중국이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자기들을 도와준 나라를 강박하면서 세계적 패륜국가 북한을 돕는 것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오만임을 알아야한다. 청나라가 19세기에 베트남과 조선에 간섭하다가 망한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본다면 그 때와 유사한 오만과 소아적 패권주의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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