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치과 의료의 꽃 임플란트. 임플란트의 역사는 기원전 2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치아가 상실되면 조개껍질, 상아 등을 잇몸 속에 넣어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개념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임플란트 역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1981년부터 극소수 개원가와 대학병원에서만 임플란트를 시술하였으며 1990년부터 소수의 외국산 임플란트들이 개원가에서 활발히 시술되었습니다. 1997년 오스템社가 최초로 국산을 제조, 시판 시작하였습니다. 필자는 1995년부터 수입산 시술을 시작으로 현재는 오스템만 전문적으로 식립하고 있다. 최초로 심은 후배 한의사는 아직도 자연치과 똑 같이 잘 사용하고 있다하고 골 손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30~40년 이상은 너끈히 쓸 것으로 보인다. 무치악 환자에게는 그야말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부분이든 완전 틀니든 모든 틀니는 잇몸에 상처를 내고 수시로 벗겨지며 식사 도중에 음식물이 끼어 씻은 후 다시 넣어야하니 그 얼마나 불편한가. 반면에 임플란트 고정성 틀니는 이러한 불편을 일거에 해소시킨다. 맨발로 자갈길을 걷다가 자가용 얻어 탄 기분일 것이다.  2001년부터 임플란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져 점점 보편화되었고 작년 7월에는 세계 최초로 65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임플란트 의보급여를 개시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완전 틀니 환자는 제외되었다. GNP 6만불이 넘는 유럽의 복지 선진국에서도 불가능한 것을 고작 2만5천 정도의 중진국인 한국에서 시행 가능한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깝다. 유럽의 복지정책 전문가들이 언빌리버블을 외치고 있다. 사실 아이러니한 속사정이 있음을 어찌 알리.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저 수가와 시술실력이다. 임플란트 수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전 세계 최저이다. 북미와 유럽의 1/5이며 동남아 후진국의 절반 정도로 싸다. 왜 일까? 치과 의과 한의과 할 것 없이 한국의 모든 의료보험정책은 오로지 저수가 일변도인 이유로 국민들도 싼 것이 최상의 선인 것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다. GNP 2천불의 필리핀보다 훨씬 싼 의료비는 엄청나게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함에도 아랑곳없이 초지일관 저수가정책만 지속되고 있다. 애완견 개주사가 5만원인데 사람주사는 만 오천원이다. 웃음만 나온다. 또한, 일부 저급한 병의원의 저수가 마켓팅도 큰 문제이다. 싸게 많이 하자? 이게 무슨 난전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짓거리인지 한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싸구려 임플란트는 수명도 싸구려며 의사 실력도 싸구려, 양심도 싸구려다. 사람은 부품의 조합이 아니질 않는가? 적절한 현실수가를 지급하지 않는 막무가내씩 저수가 제도는 수많은 피해상황을 연출하는데도 꿈적도 않는다. 싼 것만 찾는 국민성도 문제지만 정부정책이 훨씬 더 큰 문제이다. 모든 의사들은 양질의 진료를 통해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데 자기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참 좋은 의사란 얘기를 들어가며 진중하고 진실하게 진료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전세계 어디를 가야 도시 대로변 제일 비싼 임대료 건물에 병의원이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가? 유일하게 대한민국뿐이다. 일본을 가도 미국을 가도 병원간판은 도저히 찾기가 힘들다. 골목이나 한적한 외곽에 있을 뿐이다.  의료정책은 유럽처럼 사회주의 정책이 최선인 것 같다. 거의 지역 보건소 기능을 진실하게 하고 있다. 내과의사는 하루에 10명 전후를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게 보고 있다. 치과는 15명을 넘지 않는다. 타 과도 마찬가지. 이렇게 해야 오로지 환자를 위한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 대로변 의료시설은 전혀 필요치 않다. 의사중 신불자가 30%란 뒷얘기도 들린다.  군단위 준종합 병원에서 의사를 모집했더니 지원자 중 2/3가 신용7등급 이하더란 사실 놀랍지도 않은 얘기를 들었다. 이게 현실이다. 이래서야 어찌 오로지 아픈 사람을 위한 진실한 진료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양심있는 착한 의사는 신불자의 길로 자동 인도되는 코스인 것이 한국의 의료현실이다. 싸면 좋다, 다만 양질이어야 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조건을 적절히 충족시키는 마법이 절실한 현실이다. 인식의 전환과 발상의 변혁이 간절하다. 따스한 손길로 아픈 사람의 이곳 저곳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돌봐드릴 수 있는 날은 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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