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이는 어린이집 현관에 신발을 정리하고는 곧장 아빠를 부르며 뛰어간다. 그리곤 품에 안겨 한참 어리광을 부리다가 아빠 손을 꼭 잡고 가방을 정리하러 교실로 들어간다. 아이와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가는 아직 소년 같은 젊은 아빠는 실은 아빠가 아니라 군 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이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포도원 어린이집은 장애통합 어린이집으로, 장애 영유아와 비장애 영유아들이 함께 생활하며 놀고 배우는 곳이다. 장애 영유아가 첫 교육시설에서부터 비장애 영유아들과 함께 어울려 배우게 되면 장애 영유아는 물론 비장애 영유아에게도 교육적 효과가 크다.  우리 원에는 0세부터 7세까지의 영유아 39명을 7명의 교사들이 돌보고 있는데, 장애 영유아를 돌보는 일은 사명감만으로는 부족한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 역시 보조 인력 문제이다. 장애 영유아 3명당 교사 1명이 배치되기 때문에 한 아이라도 돌발행동을 할 경우 한순간에 교실은 엉망이 되고 수업이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소중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행복한 보육을 받기 위해서는 보조 인력의 확충이 꼭 필요한 실정이다. 처음 사회복무요원을 신청한다고 했을 때는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여자교사들만 있는 곳에서 남자 성인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꺼리는 부모님들도 있었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걱정하는 관계기관의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논의 끝에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고 사회복무요원을 배정받았는데,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사회복무요원은 그간의 염려를 순식간에 날려 주었다. 약하게 보이는 체력에도 장애 유아를 업거나 안고 견학지로 이동해 주었고, 여자교사들의 힘든 일을 거뜬히 도와주며 때로는 형같이, 때로는 오빠같이 동화책을 읽어주고 밥을 먹여주었다. 함께 하는 순간순간이 감사와 기쁨의 순간들이었다. 올해는 더 많은 장애아동을 돌보고자 한 명의 사회복무요원을 더 충원 받았다. 먼저 와 있던 사회복무요원은 "이런 사람이 와야 하는데"하며 필자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해 주었고 후임으로 온 사회복무요원에게 장애 영유아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보육하기 까다로운 아이는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상세히 지도해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들은 "일 잘하는 한 명의 사회복무요원이 일 못 하는 열 명의 보육교사보다 낫다"고 말하며 좋아했다.  우리 원이 다른 어린이집보다 많은 장애 영유아를 보육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봐 주는 사회복무요원의 덕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가를 떠나며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하며 벌써부터 걱정하던 사회복무요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원장으로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이 글로나마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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