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철저한 신분사회(身分社會)였던 왕조시대(王朝時代)를 지나,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理念)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우리 헌법에도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명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正體性) 확립을 통한 주관적(主觀的) 행복 추구보다는 사회적 신분으로 포장된 객관적(客觀的)이고 위선적(僞善的)인 삶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생은 100m 레이싱(racing)이 아니다. 기를 쓰고 앞 사람을 젖혀야 하거나 또 그리 숨 가쁘게 달려가 봐야 죽음이 우리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인생은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전시(展示)하고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오직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 세상을 원망하는가? 왜 자신의 처지를 비관(悲觀)하고 자기학대(自己虐待)를 하는가?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이기에, 세상이 내 뜻대로 되어 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살아가면 그만일 것이다. 괜히 주위를 살피고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성질이 좀 급하다는 소리를 한다. 물론 나는 식사 속도도 빠르고, 빨리 읽고 빨리 쓰는 편이기는 하다. 그런데 나는 고속도로를 주행하면서도 과속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리고 나를 앞질러 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늘 추월(追越)을 허용한다.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을 뿐, 누가 나를 앞질러 가든지 말든지 그것은 전혀 나의 관심사(關心事)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왜 모두들 피곤하고 위험한 주행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고급 승용차에 몸을 싣고 있어도, 고속주행(高速走行)은 사고(事故)의 위험이 큰 것이며, 앞에 가는 모든 차를 추월해도 목적지는 한 곳이다. 인생의 종착역(終着驛)은 곧 죽음이 아닌가? 어차피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이라면, 굳이 앞을 다툴 이유도 없고 또 그리 서둘 것도 아니며, 타고 가는 자동차의 차종(車種)이나 배기량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즐거운 여행이란 내가 어떤 심미안(審美眼)을 가지고 여정(旅程)에 올라 있는가가 문제이고, 또 동승자(同乘者)가 누구인지만 중요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속도로 운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주위 사물에 대한 심미안을 느낄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제아무리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달려도 주행이 너무 빠르면, 물리학 법칙상으로도 시야(視野)가 속도에 비례하여 좁아지게 될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으로도 우리 뇌의 긴장감이 높아져 주위 사물(事物)에 대한 심미안을 즐길 여유를 잃게 된다. 자신이 타고 있는 고급 승용차의 성능만 과신하여 도로 교통법도 무시한 채 오만한 질주를 하다가, 마침내 큰 사고를 저질러 자신은 물론 타인들까지 불행하게 만든 사례를 우리가 지금 보고 있지 않는가? 의미 없이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행동을 두고 성질이 급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당장 결정하고 처리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거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행동을 나무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혀 급할 이유가 없는 일에 급하여 큰 화(禍)를 자초하는 일은 특히 경계(警戒)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