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혼란하고 힘든 시기에 세월호가 떠올랐다. 1072일 동안 차디찬 진도 앞바다 물밑에 있던 이 세월호가 지금에서야 뭍으로 옮겨지고 있다. 익혀 아는 사실이지만 이 배의 침몰 희생자 대부분이 우리의 어린 자식들이었다.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들에게 '미안하다','사랑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잘못이다'는 말로만 대신할 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은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언급은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 최순실이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罷免) 선고를 받자 '대성통곡(大聲痛哭)'했다고 한다. 그녀가 왜 '대성통곡'했을 까. 국정을 농단해 사익(私益)을 추구한 반성에 대한 의미일까. 아니면 박근혜를 파면당하게 한 죄책감일까. 탄핵을 일으킨 정치권에 대한 분노 또는 헌재에 대한 적대감인 지 이중에 하나 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목표했던 사익이 원안대로 추진되지 못한 야수적(野獸的) 분노일 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까지 기성세대는 유교문화(儒敎文化)에 젖어 있다. 그래서 평생 '대성통곡'을 할 기회는 다섯 손가락 내외일 것이다. 첫번째를 꼽는다면 부모 상(喪)을 당했을 때다. 조선시대 때 뼈대 있는 집안에서 부모상을 당하면 묘지에서 움막을 쳐놓고 3년 동안 조석으로 상식(上食)한 후 대성통곡을 했다. 대표적인 이가 율곡이다. 두 번째는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인 '참척(慘慽)'이다. 이 경우 부모는 대성통곡보다 더해 몸에 있는 피를 모두 쏟아낼 정도로 절규(絶叫)를 한다.  우리 역사에서 국민 전체가 대성통곡한 사례도 있다. 지난 1910년8월29일 대한제국의 국권(國權)이 일본에 넘어간 한일합병(韓日合倂)이다. 이를 우리는 경술국치(庚戌國恥)라 하고, 전 백성이 대성통곡을 했다. 앞서 1905년 대한제국과 일본간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사설을 통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날 에 목 놓아 통곡하노라)을 게제했다.이 사설은 장지연이 전 백성의 대성통곡을 글로써 대변한 역사적 사실이다. 지난 2015년 4월16일 오전 평택항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맹골수도에서 침몰하는 대참사(大慘死)가 발생했다. 이 배에는 들뜬 마음을 안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과 관광객 등 476명이 타고 있었다. 이 사고로 단원고 학생 250명과 일반 승객 등 304명이 숨졌다. 정부는 그해 11월11일 까지 실종자에 대한 수색했지만 단원고 학생 9명은 수습하지 못했다. 이 참사에서 국민이 확인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안전불감증'이었다.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사후대책은 물론 안전대책마저 총체적으로 부실하는 등 국가운영이 땜방식이고 정상적으로 볼 수 없었다.  특히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역할은 훗날 까지 비판을 받을 것이며,역사의 죄인이자 중대한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인 단원고 학생가족 등이 울부짖었던 것처럼 대성통곡과 그 고통을 가슴에 안고 있을 까 하는 것이다. 꽃다운 나이, 그 꽃을 피워주기위해 헌신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그런데 그 꽃이 채 피기도 전에 꽃망울이 차디찬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대성통곡' 하면서 똑똑히 지켜봐야만 했다. 특히 단원고 미수습자 가족은 3년이라는 세월을 차가운 물속에 있던 내 피,내 분신을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매일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어야만 했다. 최순실의 대성통곡이 국민적 분노를 더욱 일으킨다면, 세월호 유족들의 대성통곡은 '시일야방성대곡'처럼 대한민국의 역사에 영원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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