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야_날 부르는 쩌렁쩌렁 고함소리  무심코 내다보니 대운동장 한복판에  쌀 한말 짊어지시고 아버지가 서 계셨다    어구야꾸 쏟아지는 싸락눈을 맞으시며  새끼대이 멜빵으로 쌀 한말 짊어지고  순애야_ 순애 어딨노? 외치시는 것이었다    너무도 황당하고 또 하도나 부끄러워  모른 척 엎드렸는데 드르륵 문을 열고  쌀 한 말 지신 아버지 우리 반에 나타났다    순애야, 니는 대체 대답을 와 안하노?  대구에 오는 김에 쌀 한말 지고 왔다  이 쌀밥 묵은 힘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래    하시던 그 아버지 무덤 속에 계시는데  싸락눈 내리시네, 흰 쌀밥 같은 눈이  쌀 한말 짊어지시고 아버지가 서 계시네      -이종문 시인의 '아버지가 서 계시네'    우리들에겐 모두 이 시(시조)에서처럼 철부지 시절이 있었다. 철부지(不知) 시절, 순수해서 부끄러웠던 그 시절을 거쳐 비로소 우리는 한 성인으로 성장을 한다.  이 시조는 그 부끄러웠던 철부지 시절이 소재다. 난해한 불통의 시들이 대세인 요즘, 사투리도 재밌게 읽히고, 우리들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가정과 孝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다. 독자가 없는 시가 무슨 존재 이유가 있겠는가. 시의 첫 장면은 '어구야꼬' (흰 쌀밥 같은) 싸락눈이 쏟아지는 날, 싸락눈을 맞으시며 '새끼대이' 멜빵으로 쌀 한 말 짊어지신 우직한 아버지가 딸이 공부하는 초등학교를 찾아 운동장 한 복판에 서 계신다' 둘째 장면은, 순애야, 순애 어딨노? 하며 사랑스런 딸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무식한 아버지를, 부끄러워 모르는 척 하며 엎드려 있는 철부지 딸, 그리고 조용한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나타나신 떳떳한 아버지의 모습을 재밌게 대비 시켰다.  그런데 철부지 딸은 시골뜨기 아버지의 모습이 황당해서 부끄러워하고만 있다.(철부지 시절, 우리들의 부끄러웠던 자화상!) 그런데 그 훌륭하신 아버지는 지금 무덤 속에 계신다. 속절없이 흘러간 생의 무서운 시간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옛날처럼 싸락눈은 펄펄 내리는데 지금 아버지는 어디 계신가, 쌀 한 말 짊어지시고 말없이 서 계시던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신가….  요즘 부모님에 대한 세태가, 孝에 대한, 가정에 대한 인식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곳곳에 노인 요양병원이 성업 중이고, 부모와 자식 간의 소중한 인간적인 고리가 점점 멀어져 가 안타깝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세태인가.  요즘 한국시단은 소통이 잘 되지 않은 모던한 시들이 대세고, 전통 서정시들이 코너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시 쓰는 시인은 이 만 명인데 반해 시 읽는 독자는 오백 명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독자가 없는 시는 존재 이유가 없다.   ■김성춘 시인 약력 ·1974년 '심상' 신인상 등단(박목월 시인 추천) ·시집, '물소리 천사' '온유'외 다수. 가톨릭  문학상외 다수 ·첫 산문집, '경주에 말을 걸다'.  ·현) 동리목월 문예창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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