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사랑을 하듯 한 몸이 되어 길 양쪽에 서있다 하여 예로부터 쌍정자라 부르는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인 연리목(連理木)이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조선왕조 과거시험 승과(僧科)에 급제(及第)하고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이 주지를 역임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인 수다사(水多寺)와 함께하고 있다 . 사랑나무인 연리지(連理枝)가 유명하게 된 것은 중국 당(唐)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당 현종 이융기와 그의 비(妃) 양귀비와의 사랑을 읊은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恨歌)의 셋째 부분에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를 만나보는 장면으로 마지막 구절은 현종과 양귀비의 만남을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애절하게 나타낸 것에 유래한다. "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선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선 두 뿌리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리라 " 연리지 아래서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는 이곳은 옛날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춘남녀가 남의 눈을 피해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밤을 지새우다 그 자리에서 느티나무로 변하였는데, 그 옆에 두 사람의 명복을 비는 또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어 지금은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하여 쌍정자로 불려 지며, 요즈음에 유독 젊은 연인들이 쌍정자 연리목 아래에 많이 찾아와 서로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간다한다. 신라 흥덕왕 5년에 우리나라에 범패(梵唄)를 최초로 전한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에 의해 창건된 수다사는 연악산(蓮岳山) 봉우리에 흰 연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지었다 해서 연화사(淵華寺)라 불려 지다가, 화재와 홍수로 여러 번 소실됐으며 선조5년(1572)서산대사와 사명대사에 의해 증축돼 모든 중생의 고통과 병고와 위급할 때에 한 방울만 마셔도 구세수(救世水)인 감로수(甘露水)를 의미하는 수다사로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당시에는 일만여 명의 승병(僧兵)들이 의국법회(義國法會)를 열었고 24개의 전각(殿閣)과 사십여 명의 스님들이 계실정도로 큰 도량이었으며 보물 제1638호인 영산회상도와 유형문화재인 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진 대웅전과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또한 조선 영조시대에 수다사에서 정진하던 승려 정재진이 꿈에 도깨비들과 놀고 장난친 일과 구전내용을 가락으로 만든 무을풍물(舞乙風物)놀이가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축제를 개최하고 무을풍물보존회를 조직하여 전승되고 있다. 맑은 물이 많은 수다사에서 작금의 대한민국 혼란과 위기 상황을 나라가 외침으로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왜적(倭敵)의 통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담판지어 포로로 끌려간 우리백성 3천여 명을 데려온 사명대사의 흔적 속에서 국난극복의 지혜를 찾아보고,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혼율 상위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쌍정자 연리목 아래에서 사랑을 언약하며 가을에 찾으면 전국의 명소로 소문난 고목의 노란 은행나무잎의 향연에 취하는 연악산 등산로가 반겨주는 수다사로 봄나들이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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