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왜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던 '버니 센더스'를 버리고 귀족 중의 귀족인 '힐러리'를 경선에서 택함으로써, '트럼프'같은 사람에게 그 큰 권력을 진상하였는가? 그것이 어쩌면 미국의 정치 역사상 최악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음은 좀 더 두고 볼 일이긴 하다.  힐러리나 트럼프 역시 기득권 귀족이긴 마찬가지인데, 한 쪽은 정치적 기득권자이고 다른 쪽은 부(富)의 기득권자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왜 다수의 약자들은 항상 자신들의 리더를 그들 속에서 찾지 못하고, 소수(小數)기득권의 강자들 속에서만 찾으려 하는가?  그것이 바로 기득권들이 만든 프레임 효과라는 것이며 그들 소수 지배자들의 해묵은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가 또한 지난 미국 대선이기도 하다. 버니 센더스의 연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나는 정치를 위해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일곱 명이나 되는 내 손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함' 이라고 한 말이었다. 여기서 다시 우리 문제로 돌아와서, 이제 우리는 그들의 민낯을 보았고, 그들의 전략이 무엇인지도 확연히 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씌워놓은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그들에게 끌려가서는 안 될 것이며,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만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하면 대단히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려 오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우리에게도 '버니 센더스'에 필적할만한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진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좀 더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하려는 사람, 그는 과연 누구일까? 한 순간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고, 또한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느 누구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참정권(參政權)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며, 나와 내 자식들의 미래를 타인의 결정에만 맡겨 둘 것인가? 내가 고용할 사람을 뽑는 데, 타인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는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길도 아닐 것이며, 단지 내가 선택할 후보의 적격성 여부는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여론몰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또 다른 형태의 프레임에 다름 아니고 군중심리를 이용하고자 하는 전략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가치란 주가(株價) 변동처럼 조석(朝夕)으로 변화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살아온 인생의 궤적으로 평가 될 뿐이다. 따라서 무슨 주가처럼 요동치는 여론에만 휩쓸려 갈 것이 아니라, 철저한 검정을 통한 주관적 판단이 우선 되어야 하고, 그러한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을 집계하는 과정이 바로 선거라는 절차이다. 자격과 세력에서 세력이 자격에 우선하는 선택기준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모두가 자격과 능력을 우선하는 판단을 하게 되면, 자격 있는 사람이 바로 세력을 가지게 되고, 우리에게는 그것이 곧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최선을 두고 차선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무지한 자의 세력과 권력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우리는 너무나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절대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을 수만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란 다수결의 원칙을 근간으로 한 제도이다. 따라서 절대 다수가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성을 모아야 할 것이며, 왜곡된 정보를 철저히 경계하고 또 검정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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