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누구일까. 그는 누구일까. 그녀도 되고 그도 되는, 우리 모두를 합친 존재라 할까. 침상에 껌 딱지처럼 눌러 붙어 신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시널은 오늘도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살아갈 희망을 잃은 시널에게 누가 시널(sinner: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는가. 바로 자신이었다. 지구 상에는 수많은 시널이 있고 과거, 현재, 미래를 가득 채운다고 시널이 말했다. 시널1, 시널2, 시널3… 영겁으로 이어지는 시널∝… 손가락들이 시널의 귀를 헤집는다. 무슨 소리야! 죄인이라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시널이 젖은 눈으로 되물었다. 그럼 나는? 시널은 누구보다 불의를 증오했다. 뇌물을 바치며 승진하는 동료를 시기하지 않았고, 스스로 뇌물을 바친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다. 그저 성실히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나이 쉰 넘어 마련한 13평짜리 아파트 하나가 이제 겨우 온전한 내 것이 되었다. 더 이상의 욕심은 없었다. 쫓겨나다시피 퇴직을 하고는 아파트 베란다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하얀 눈이 쌓인 먼 산을 바라보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직한 이웃의 청년이 찾아왔다. 퇴직한 직장에 추천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다음날 아침, 시널은 산책하러 나갔다. 화단 사이로 걸어갈 때 육중한 물체가 떨어져 내리며 시널의 어깨를 스쳤다. 그는 현기증을 일으키고 쓰러졌다.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청년이 그의 몸 옆에 누워있었다. 그날부터 시널의 삶에 어둠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보이고, 아귀다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꿈을 꾸면 청년이 나타났고 그 얼굴이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변했다. 시널은 널브러진 청년의 참혹한 모습을 떨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조깅을 했고, 신문을 죄다 읽었고, 텔레비전에 위태로운 일상을 맡기고 손 가는 대로 채널을 돌려댔다. 뉴스나 드라마나 온통 싸움판이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현실에서나 픽션에서나 모두가 희망을 잃어버리고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열강의 위협 속에 움츠린 이 나라, 새 깃발을 들고 희망을 안겨줄 사람은 누구인가? 사면초가에 싸여있어도 서로 헐뜯는 혈전만이 난무했다. 그것이 앞으로 자신이 살아내야 할 세상이라면 귀를 막고 안대로 눈을 가리고 싶었다. 입에 침을 튀기면서 세상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라니 울림 없는 북소리였다. 시널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졌다. 조깅도 그만두고 텔레비전 안테나선을 뽑았다.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하얀 눈으로 덮인 깨끗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기다리지 않았다. 시널은 남은 생명을 신에게 맡기며 회상에 젖었다. 홀로, 쓸쓸히 세상 떠나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가난을 핑계 삼은 불효였다. 자신을 버린 수많은 이성이 생각났다. 버림받을 때마다 새로운 이성을 찾아 편력에 편력을 거듭했다. 외로웠기 때문이라고 궁색하게 변명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욕을 참지 못한 결과였다. 자신 역시 정당하게 내야 할 세금을 속이면서 거대한 포식자의 욕심을 손가락질했다.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지 않았고 그저 아파트를 갖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런데… 무엇보다 청년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한몫을 했다. 시널은 신음하며 몸을 뒤척였다. 며칠 굶은 그의 육신이 어딘가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레테의 강에 이르렀다. 죄의 기억을 없애주는 망각의 강이 그의 심연에 속삭였다. 시널아, 깨끗이 몸을 씻어라. 천국으로 가는 계단 끝에 서 있던 프로방스의 음유시인이 말했다. 나는 아르노, 내 노래를 들어주오. 나도 노래하며 울고 가는 중이오. 지나간 어리석음을 슬프게 되돌아보고, 내가 바라는 앞날을 즐겁게 기다린다오. 이 계단 꼭대기까지 그대를 인도하는 덕성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바라건대, 이따금 나의 아픔을 기억해주오. 시널도 단테의 노래로 답례했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시인 아르노가 사라지자 레테의 강물이 붉게 물들었다. 골고다 언덕을 흘러내리던 피처럼 주홍빛이다. 시널은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창밖에는 어둠을 지새운 해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