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세대인들이 사회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스트레스(stress)'란 말이다. 스트레스는 어떠한 자극에 대하여 생체가 나타내는 방어반응, 또는 그 반응을 일으키는 자극, 곧 질병, 상처, 추위, 피로, 긴장, 불안, 억압, 분노가 쌓인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겪는 삶의 고통이요, 아픔인 동시에 노이로제의 일종이다. 의학에서 말하는 '노이로제(neurose)'도 공포, 과로, 갈등, 압제 등의 감정체험이 원이 되어 일어나는 신체적 병증의 총칭을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살수는 없는 까닭에 가족관계, 직장이나 단체, 그룹에 속한 존재로써 타인과의 거래나 교류에서 빚어지는 신경성 부담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자존심이 꺾는 것이 바로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일이다. 프랑스의 문학가 파스칼은 "억압은 자기의 질서를 넘어 절반을 지배하려고 하는 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만만한 데 말뚝 박는다'고 세력이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호되게 구박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굴욕받기 싫어하는 자주성이 강하다. 서로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자존심이 있어 쉽게 굽히는 성질이 아니다.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누르는 강제는 사람에 따라 주고, 받는 감정의 차이가 유별나다. 범(法)은 국가적인 강제로 실현되는 사회규범, 국가 및 공공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따위로 지키기가 어렵지만 국민을 위한 일종의 편리다. 강제력이 없는 법은 타지 않는 불이며 비추지 않는 등불이다. 사람의 고집은 법도 못 당한다는 말처럼 속박 당하고 구박 당하는 것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건축하는 기사이다. 영국 속담에도, 사람이 한 필의 말을 개울까지 몰고 올수는 있다. 그러나 그 말에게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하물며 억제하여 압박하는 억압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의 비장한 각오다.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드는 "억압은, 자기의 질서를 넘어 절반을 지배하려고 하는데서 존재한다"고 했다. 고삐를 뒤에서 당길 수 있도록 훈련된 말은 결코 도망 칠 수가 없다고 한다. 판단이 미약한 짐승은 본래 자기 억제를 모른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그가 자기 억제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인들은,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가 가지고 다니는 휴대품이라 했지만,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여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라 사람마다 색깔의 농도가 다르다. 그래서 자존심은 맑은 미덕(美德)의 원천이며, 허영심은 모든 악덕(惡德)과 못된 버릇의 원천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묘약은 없지만 역지사지의 이해로 처지를 바꾸던지 아니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과 입장도 유한의 테두리를 넘기고 정도(定道)를 허물기도 어렵다.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 무턱 데고 참다보면 갈등에 얽혀 병을 얻게 된다.옛 성인들의 말씀으로는 신앙심을 통한 자기 성찰이라 한다. 이해와 윤리, 그리고 행복의 길을 신속히 아는 방법은 믿음에 있다고 한다. 신앙이란 소망하는 것의 바탕,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가 되어 본심(本心)에서 구원을 찾는 길 이다. 신앙이란 열망의 모습을 가진 사랑이며, 이성의 연장이다.  종교인 루터는, "신은 나의 생명, 나의 성벽이다"사랑과 이해는 신의 은총이란 것에 위로를 받으면 마음은 위인이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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