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로운 국회의원을 뽑은 지 어제로 꼭 1주년이 됐다.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선거를 치러 오면서 '참으로 옳은 선택을 했구나' 만족할 때도 있었고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표를 던지지 말았어야 옳았다'는 반성을 할 때도 있었다. 늘 완벽한 선택은 있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정치적 맹목은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주권자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단언컨대 우리의 정치적 성향은 맹목에 가까웠다. 지역에, 혈연·지연·학연에, 이데올로기에, 오래 전에는 고무신과 막걸리에 그 아까운 주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뽑아놓고 보니 형편없는 인물이었다는 반성은 항상 뒤늦은 법이다. 비단 이 문제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렇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유효한 경험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만큼 민주주의다운 제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라 선거의 성패가 결정된다. 우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제도 아래 선거를 치른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시행착오는 거듭됐고 선거 이후 후회는 막심했다. 1년 동안 각 지역의 대표로 여의도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제대로 한 번 살펴보자.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에 예산을 많이 끌어오고 자기 지역의 민원을 잘 해결한다고 해서 유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그건 자치단체장이나 정부기관이 할 일이다.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잘 했느냐,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진정한 국회의원의 몫이다. 그런데 대부분 지역민들의 민원 심부름이나 하고 자기 당의 당론을 관철시키기 위한 거수기 노릇이나 했다면 분명히 잘못 뽑은 국회의원이다.  끊임없이 정부를 견제하고 정부의 잘잘못을 가려 시정토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의원회관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 세비나 축내고 앉아 있다면, 그리고 지역의 유지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제기해 놓은 지역이기주의에 편들고 나서는 일을 하고 있다면 남은 임기동안 주민들은 참 답답한 노릇이다. 임기동안 제대로 된 입법 발의 한 건 못하고, 따가운 대정부 질의 한 번 못하는 국회의원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여의도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쉰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만은 그들이 키웠고 자초했다. 늘 기대를 저버렸고 희망을 꺾었다. 국민들을 한숨 쉬게 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도록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책임에서 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선거를 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느닷없는 조기대선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에는 후회하지 않을만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국민들은 아무리 학습해도 선거 때만 되면 또 잊어버린다. 국가를 위해 헌신할만한 지도자가 누구일지 제대로 판단해야 하지만 온갖 장치들이 그 선택을 방해한다.  이제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그 프레임은 고물상에 가도 찾을 수 없을 판이다. 진보였던 후보는 보수적 공약을 내걸고 있고, 보수였던 후보는 매우 혁신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보수냐 진보냐를 가리는 것은 촌스러운 짓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역성도 희석되고 말았다. 호남후보냐 영남후보냐, TK냐 PK냐 따지던 때도 지났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지 한가롭게 지역성 운운하는 때가 아니다. 안보와 경제,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누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한다. 과거 서너 달 되던 넉넉한 선거기간에 비해 이번 선거는 후보가 정해진 후 불과 한 달 남짓만 허락됐다. 그렇다고 대충 선입견에 따라 대통령을 뽑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대통령 선거를 상기해 보자.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박근혜를 대통령을 뽑았는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아련한 추억으로, 한나라당 대표시절 원칙을 고집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가족 비리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뽑았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지금 우리는 철저하게 후회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이 백척간두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국민들의 선택에 달렸다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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