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하는 집단행동 중에 전쟁만큼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은 우연도 필연도 아닌 사변(事變)이다. 즉, 우연히 발발한 것 같은 전쟁도 그 원인을 엄밀히 살펴보면 필연적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으며,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 전쟁도 따지고 보면, 그 필연을 키워온 내적(內的)요인들을 발견하게 된다. 전쟁은,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요. 싸워서 이기는 것은 차선이다. 그리고 싸우고도 지는 것은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차선을 두고 최악을 선택할 수는 없으며, 최선을 두고 차선을 선택할 이유도 없다. 최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에 덩달아,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북핵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 무책임 발언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전쟁은 게임이 아니며 바로 생사의 문제이다. 이 땅의 주인은 우리이기에,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바로 우리 민족의 명운과 생사를 가름하는 절박한 사건이 되겠지만, 주변국들의 이해(利害)는 우리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주변 강대국들은 이웃 나라의 전쟁을 통해 군수산업 특수를 누릴 수도 있고, 자국의 패권 강화라는 정치적 이익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38도선 이남에 세워진 대한민국 정부의 군대는 외침(外侵)을 막기는커녕, 국내 치안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빈약한 무장인 데다, 그 악명 높았던 국민방위군 독직사건에서 보듯이 고위직들의 부패가 극에 달해, 병사들이 식료품조차 제대로 조달받지 못하고, 영양실조는 물론 영내(營內)에서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는 어처구니없는 지경이었으니, 요즘 전후세대(戰後世代)들이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70년대 초반까지도 병사들은 일일(一日) 필요 칼로리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조악한 급식에 허기를 견뎌야 했고, 이유 없는 상급자들의 야만적 구타행위가 일상사였다는 것을 아시는지들 모르겠다. 요즘이야 수형자(受刑者)도 인권을 주장하지만, 우리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영되었을 뿐, 수형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 병사들의 인권은 없었다.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야만적인 집단행위이기에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며, 전쟁을 위한 군대라는 조직 역시 필요악일지언정 만들지 말아야 할 조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병영생활 한 번 안 해본 사람들이 함부로 전쟁불사, 선제공격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막상 불행한 사태가 발생되면 가장 먼저 조국을 버리고 줄행낭을 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1950년 6월 25일,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중무장한 공산군이 전면적인 남침을 시작하기 불과 하루 전 까지도, 서울의 시민들은 그 참혹한 전쟁이 내일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좌우(左右) 정파싸움 내분에만 몰두해 있었다. 더 거슬러, 이조(李朝) 오백년의 역사는 당쟁의 역사이며, 임진년에 왜군이 대규모 침략 선단을 이끌고 부산포에 당도하기 직전 까지도, 서울의 조정(朝廷)에서는 변란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결국은 자국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중국의 도움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는 점 등이 6·25 전쟁과의 유사함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이념이든, 아니면 자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였던 간에 미국이 선두가 된 UN군의 참전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아예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평화롭다. 여전히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며, 누가 정권을 잡을 것인지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다. 그런데 6·25 전쟁은 종전된 것이 아니며, 아직도 휴전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외신(外信)들은 지금 한반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지만, 양치기 소년 효과에 의해 면역이 된 우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든, 미국의 핵 항모가 이동해오든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북핵도 엄포이고, 트럼프의 선제공격론도 엄포일 뿐이니까…. 그런데 기침이 잦으면 감기를 의심해야 하고, 감기를 방치하면 폐렴으로 발전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안보에 설마는 없다. 휴전 후, 남과 북은 수십년간 군사력을 증강시켜왔다. 그러나 한반도에 전쟁이 재발하면, 남과 북의 군사력 대결이 아니라 다시한번 주변 강대국들의 신무기 시험장이 될 가능성이 크고, 가장 처참한 피해는 바로 한반도의 주민인 우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희생되는 불쌍한 국민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쟁(政爭)을 중단하고, 남북문제는 우리가 주도적 위치에 서서, 오히려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역이용하여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외교적 기지(奇智)를 발휘할 때라고 생각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드'가 과연 한반도의 전쟁을 막아 줄 것인지, 오히려 부추길 것인지는 전문가들이 판단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사드가 중국을 자극하고, 중국과 미국 간에 신 냉전시대를 만들 가능성마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략 70년 전 쯤의 한반도 상황을 한 번 되돌아보자. 구 소련과 미국의 긴장이 충돌하고, 그 후 반세기에 이르는 미소(美蘇) 냉전시대의 서막을 올린 곳이 바로 우리 한반도였으며,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안고 있는 지정학적 운명일 수도 있지만, 역사의 되풀이를 막고,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