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 전 얘기이긴 하지만, 예전엔 특별한 용무로 적성국가(敵性國家)를 방문한 사람은 반드시 당시 '안기부(國家安全企劃部)'에 여행 감상문을 제출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88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에, 당시 내가 취업하고 있던 유럽 회사에서 발급해준 제 3국가의 임시 국적을 가지고, 구(舊) 소련의 '오데사'와 '노보로시스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안기부'에 소위 그 여행 감상문을 제출하였는데, 나는 그 감상문에서 공산권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 바가 있다. 그 감상문이라는 것이, 당시 공산권 국가 방문 후의 다분히 요식적인 절차이긴 했지만, 나는 결코 안기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런 내용의 글을 쓴 것은 아니며, 당시 내가 본 구 소련(蘇聯)은 실제로 멸망 직전의 상태로 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즉, 공무원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되어 있었고, 자국의 화폐보다도 그들의 적국인 미국의 달러화를 백배는 더 선호함은 물론 그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에서는 눈곱만한 애국심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세계에 대한 동경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그들의 강렬한 열망이 곧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라 예견하게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는 얘기다. 아무튼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후, 이 지구상 위에 북한과 더불어 중국이 거의 유일하게 형식상 공산당 일당(一黨)체제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경제체제는 이미 자본주의화 된지 오래고보면, 이제 자유 민주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정치 이념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공산화 운운하며 반공 이데올로기에만 기대어 정치를 하려는 무리들이 있으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아니 할 수 없고, 국민을 모두 바보로 여기는 오만방자함의 극치이다.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난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정작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남북 긴장상태를 악용하는 무리들이야말로 가장 우리 안보에 위협적인 존재들이 아닌가. 안보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분열이야말로 적을 가장 이롭게 한다.  절반의 국민을 좌파 용공으로 몰고,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듦으로써 국민들의 보편적 애국심에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힌 자들이 오히려 애국을 부르짖는 적반하장을 이제는 끝내라고 말하고 싶다.  법과 원칙이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리고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복지국가 건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이야말로 우리에겐 북이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구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 붕괴되었거나 외부의 침략으로 체제 종식이 된 것은 아니며, 그 들 내부에 팽배하기 시작한 체제불만과 모순, 그리고 기득권의 부패가 바로 이 지구상에서 소비에트연방이라는 거대한 정치집단을 한 순간에 몰락하게 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백제가 망하고, '견훤'이 후백제를 다시 도모했지만, 그 역시 부자간(父子間) 불화라는 집안 내분으로 다시 망하고 만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우러진 보수를 다시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끼리도 화합하지 못하고 불화와 내분을 반복하고 있으며, 때늦은 안보위협이나 해묵은 종북몰이 연장으로 보수가 재건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지향한 것은 애시당초 보수가 아니었으며, 해방이후의 기득권 지키기 술책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이제는 국민들이 안다. 더 이상 보수의 가치를 폄훼하지 말고, 또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꿈도 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에게는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하나의 대한민국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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