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신의 모든 성능을 발육시키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을 교육이라 한다. 인간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치 아니하고 배우고 연마하는 공부방이 교실이다. 사회학적으로 말할 때, 가정이 제 1교실, 학교가 제2교실이고, 사회가 제 3교실이라 한다. 가정이란 출생, 성장을 거쳐 온 식구가 생활하는 공간인 한 가족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 생활 공동체로 가족이 살림하는 집안을 가정이라 한다. 우리는 가정이란 교실에서 스승이신 보모와 형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가정에서 평화를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인간이며, 집이란 사람이 그곳에 가고 싶을 때 가장 반갑게 맞아 들여 주는 곳이다. 그래서 마음이 이미 가 있는 곳이 곧 가정이며, 설령 우리의 몸은 가정을 떠날지 모르나 우리의 마음은 떠나지 않는 곳이다. 서양의 어느 철학자는 천당보다 더 좋은 곳이 가정이요, 가정은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지, 그것을 채굴하는 곳이 아니다, 얻기 위해 이루어진 가정은 반드시 무너지며, 주기 위해 이루어진 가정만이 행복한 가정이다.  "왕대밭에 왕대가 난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제 1교육기관인 가정이 화목하고 평화스러우면 그곳이 바로 위인의 산실인 것이다. 국가의 운명은 자녀의 교육에 달려있다. 교육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은 노년(老年)의 최상의 양식"이라 한 것은 교육은 순경(順境)에 있어서는 장식이지만, 역경에 있어서는 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를 제 3의 교실이라 한 것도 우리들의 지혜와 지식은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노정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서양교육에서 주창하는 방식은 교육은 도덕과 지혜릐 두 개의 기반 위해 서지 않으면 안된다. 도덕은 미덕을 만들기 위해서 지혜는 남의 악덕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다. 또한 도덕에 중점을 두면 선량한 사람이나 순교자 밖에 안 나오고, 지혜에 중점을 두면 타산적인 이기주의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주적이고 자치적인 인물을 배양하기 위해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굽은 나무 가지가 곧을 수 없고, 게(crab)는 아무리 훈련과 교육을 시켜도 바로 걸을 수 없는 폐단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교육의 초대의 목표는 지식이 아니고 행동이며, 목적은 성격의 형성에 있다. 다시 말하면 기계를 만드는데 있지 않고, 사람을 만드는데 기준을 둔다. 나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모나 스승에게 야단을 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겨울의 추위가 심할수록 오는 봄의 나뭇잎은 한층 푸르다. 사람도 역경에 단련되지 않고서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도 몇 몇 동물처럼 귀소현상을 가진 존재다. 가정은 몸과 마음이 정착되는 까닭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애정집단이라는 가정에서 가장 훌륭한 혈육인 부모님을 만나고, 가장 아름다운 학교, 어머님의 무릎팍이 있기 때문이다. 스위트 홈(가정이)이 스위트 하우스(건물)보다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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