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는 그 집 뜰을 점령했다. 마을 친구들까지 하느작거리는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손이 게으른 이 집 뜰은 온통 우리 세상이었다. 앞집 할머니가 지나가다 우리를 보고 탄식했다. 아이고. 이러지 말고 잔디밭을 갈아엎고 채소나 심지. 우리는 그 말에 움찔,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한 밤에야 돌아오는 가족들은 무척이나 바빴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의료체험을 나갔다 오면 꼼짝하지 않았다. 아이 둘은 학교에 가서 밤이 늦어서야 부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석류꽃이 피고 울타리에 빨간 장미가 필 때까지 식구들은 우리를 자유롭게 두었다. 일요일이었다. 모처럼 뜰에 나온 아저씨가 빨간 장미를 꺾어 들고는 아줌마를 불렀다. 화병을 들고나온 아줌마가 우리를 보고 까무러치는 소리를 질렀다.  큰일 났어. 풀밭이 되어버렸어. 아줌마는 농약을 뿌리자고 아저씨를 채근했다. 아저씨가 태연히 대꾸했다. 가만둬. 함께 어울려 사는 거야.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가만두면 어머니 집 뜰처럼 시뻘건 흙 마당이 될 텐데. 흙 마당도 좋지 뭐. 아줌마는 처음 이사 왔을 때를 들먹였다. 비가 오면 질퍽한 땅이 불편했겠지만, 우리가 번성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물 많은 땅이었다. 새벽까지 잔디를 심고 출근했던 아줌마는 자신이 해온 고생을 한탄하며 볼멘소리를 하고는, 뜰의 제일 먼 쪽에 늘씬하게 뻗어 있는 소나무를 바라봤다. 그 밑에 있던 나는 간이 서늘해서 고개를 숙였다. 아줌마가 소나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직이 읊기 시작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궁핍이 군사처럼 이르리라.  아저씨가 자신보고 하는 소리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잠언의 말이라고 대답했다. 아저씨가 약간 화난 어조로 말했다. 난 손이 바쁜 농부가 아니고 머리가 부지런한 학자인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마. 경로당에 다녀온 할머니가 대문을 들어서다 듣고 싸우지 마라, 내가 내일부터… 하는데 아줌마가 냉큼 말을 받았다. 어머니는 손도 대지 마세요. 매일 조금씩 하지 않고 하루 만에 해치우려다 또 입원하시려고요. 아저씨도 대꾸했다. 맞아,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오며 가며 즐기면서 해야지. 할머니가 시무룩해져서 안으로 들어갔다.  톤이 평소보다 높았던 아줌마의 음성이 마음에 걸린 아저씨가 따졌다. 당신, 어머니께 대하는 태도가 좀 까칠한데, 무슨 불만 있어? 아니, 이것들 때문이지, 무슨 불만. 아줌마가 제일 키 큰 내 친구 목덜미를 잡고 쑥 뽑았다. 아저씨가 점잖게 말했다. 방금 난 두 가지 생각을 했어. 나는 아저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식물도 사람처럼 함께 어울려 사는 거야. 풀도 제 역할을 한다는 거 알지. 우리는 그 말에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당신은 너무 여유가 없어. 버트런드 러셀이 쓴 '게으름에 대한 찬양' 읽어 봤지? 세상이 필요한 선한 본성은 아락바락 분투하며 사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거라고. 물론 러셀식 게으름이 무위나 세계로부터의 도피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여유로운 사람의 눈빛은 더 친절하고 부드럽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아줌마가 반박했다.  그 게으름의 여유는 타인의 노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잖아.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말하자면 끝이 없어. 자동화로 노동시간이 줄어 여유는 생겼지만 일자리가 없어졌잖아. 러셀의 <게으름>은 함부로 해석할 수 없어. 그러니까. 이것들을 뽑아내야 해.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우리가 초토화될 위기였다.  할머니는 대충대충 우리 머리를 쥐어뜯으니 목덜미가 시원해질 뿐이었는데 아저씨는 멱살을 잡아 곱게 뽑았다. 그래도 사지가 딸려 나오니 아야야, 억, 하며 친구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줌마는 한 수 더 떠서 뾰족한 호미를 들고나와 친구들의 몸을 아주 도려냈다. 내가 소리쳤다. 흙덩이를 꽉 붙잡고 네 씨를 뿌려. 아니면 잔디랑 꼭 붙어서 힘을 써. 얼마 후 아저씨가 말했다. 오늘은 요만큼만, 노동한 만큼 게으름을 부려야지. 아줌마가 안 된다고 하자 아저씨가 호미를 빼앗아 아줌마를 데리고 들어갔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토하며 아저씨의 게으른 손을 예찬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