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새 대통령이 취임한지 한 달이 지났다. 한국은 지금 새 정부가 출범했는가? 출범했다기보다는 출범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사전에 정권 인수할 시간이 없어 새 집행부의 국무위원 구성은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여야가 바뀐 지 한 달이 지났으나 국무회의 구성원으로는 대통령과 이제 겨우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외에는 아직도 모두 과거 정부의 사람들이다. 지금 한국 정부는 새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 나라 일을 해나갈 업무팀이 완비되지 아니한 상황인 것이다. 헌법상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국회가 견제하되 인사의 본질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의 인사를 하는 것은 정부가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작금에 전개되고 있는 인사청문회 경과들을 보면 뭔가 기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정부 역시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후보자를 찾는 데 쩔쩔 매는 듯한 느낌이다. 본인과 가족의 병역문제, 납세 관련 사항, 위장전입과 투기 문제, 논문표절, 그 외 음주운전 등 공직자로서의 기본자질에 관한 모든 요소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러다간 정부 진용을 완비하는 데만 반년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오늘날 정치적 계파 싸움이나 흥정으로 점철된 미국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별로 배울 게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정부에 '직무대리'(acting) 체제가 정착되어 있어 기관장 임명이 늦어지더라도 큰 지장은 없다. 연방정부의 각료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제 42대 클린턴 대통령의 첫 내각 여성 법무부 장관 후보자 배아드(Zoë Baird)는 과거 외국인 가정부의 임금에 대한 사회보장세(social security tax)를 탈루한 사실 때문에 지명된 지 한 달여 만이 철회된 적이 있다.  이는 탈세 전력 자체 보다는 외국인 가정부라는 '약자의 인권' 보호 정신에 반하는 국민적·초당적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야당이 눈 딱 감고 봐주지 않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업무 역량이 있는 후보자 군(群) 중에서 큰 어려움 없이 국회를 통과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개발연대를 거쳐 1990년대 말 정도까지는 타 지역 등에 주민등록을 옮겨 땅을 사두는 것 등은 사회에 통용된 기본적인 재테크의 하나였다.  그렇게 할 줄 알아야 경제적 감각도 있고 민첩한 사람으로 평가 받았다. 앞만 보고 직무에만 충실한 사람은 고지식하고 우둔하며 장래 대비도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취급 받았다. 필자의 젊은 날에도 웬만한 지인들은 다 그렇게 했다. 그 중에는 공직자 친구들도 있었다. 은행 대부를 받아서 땅 사러 다녔다. 모여 앉으면 주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필자에게 재테크도 할 줄 모르고 일만 하는 촌놈이라고 선배가 핀잔을 주었다. 서해안에 땅 한 조각 없어 솔직히 가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다.  준법의식·질서 등 사회 일반의 행태나 문화 수준은 다분히 국민소득(GDP) 수준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과거에 일상적이다시피 한 행태들에 대해서는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옳다. 다만 그 시점 기준과 판단 표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고위 공직 후보자 검증에 정부와 국회 간의 합리적인 역할 분담 설정이 긴요하다. 도덕성·준법성 등 보편적인 기본자질의 검증은 원칙적으로 대통령 측에 맡기는 것이다. 국회는 이 부분 검증에 손을 떼자는 것이 아니라 그 검증 자체의 정확성·공정성 등을 점검하는 것이다. 즉 일종의 상위 검증(meta vetting process)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는 '악질적이고 비열한' 것이 정부 검증에서 그냥 넘어 갔느냐 정도만을 요건 심사 차원에서 보고 바로 전문성 검증에 치중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국회 인사청문이 기본적으로 각 소관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진행되는 점과 맥락이 연결된다고 할 것이다. 위증이나 정직하지 못한 것은 안 된다. 그리고 논문에 관한 부분은 원칙적으로 정부나 국회의 검증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학위 심사과정이나 학술지 심사 등 논문 심사 영역에 맡겨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한국의 논문 심사체계 자체를 조사하고 청문해야 할 것이다. 한국 인사청문회 상황에 있어, 후보자 예정 직위의 이해관계자나 집단이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있을 수 있겠으나 이건 안 된다. 악용될 경우 일종의 선거운동 같은 형태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 초기에 이를 붙잡고 있는 국회나, 무슨 잔치인양 기상예보 용어까지 차용해 보도하는 언론이나, 고도의 정치 사회학적 이론 영역인 것처럼 알맹이 없는 해설을 쏟아내는 이른 바 폴리페서(polifessor)들의 아세(阿世)적 풍경도 눈 뜨고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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