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기에는 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강한 조직은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잘 적응하는 조직이다.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려면 조직이 평소에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조직이 되려면 우선 이른바 '좋은 리더십'이 필수적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건강한 '팔로우어십'(followership)이다. 즉 항구적으로 건강한 조직은 반듯한 부하들이 있는 조직이다. 왜냐하면 리더는 자주 바뀔 수 있지만 팔로우어는 길게는 삼십년을 가기 때문이다. 강한 조직은 '원칙'에 충실한 구성원들이 있는 조직이다. 고지식하거나 경직된 행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의 일사불란한 진행에 제동 걸 줄 아는 참모가 있는 조직이다. 그리고 반대 뒤에는 항상 대안을 제시하는 간부가 있는 조직이다. 이에 반해 "○○님 지시사항이다"에 따라 주로 일하는 조직은 강해 보이지만 약한 조직이다. 소신 있는 부하가 없는 조직은 결국 망한다. 그리고 소신 있는 부하를 배척하는 조직도 망한다. 그리고 조직을 망하게 하는 자는 앞에서 반대하는 자가 아니라 앞에서는 아첨하고 뒤에서 침묵하는 자이며, 앞에서는 침묵하고 뒤에서 반대하는 자이다. 한(漢)나라 문제(文帝)와 경제(景帝)의 태평성대인 이른바 '문경지치'(文景之治) 시절에는 유명한 '직언거사'(直言居士) '원앙'(袁盎)이 있었다. 그는 문제(文帝)가 승상인 주발(周勃)에게 지나치게 경의를 표하는 데 대해 주군이 품위를 지키라고 간언했고 주군의 애첩 신부인(愼夫人)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충언을 했다. 그 외에도 조정에서 숱한 충언과 반대를 했으나 그로 인해 좌천되거나 면직되지 않았다. 당 태종(唐太宗)의 이른바 '정관지치'(貞觀之治) 시절에는 대쪽같이 직간(直諫)하는 재상 '위징'(魏徵)이 있었다. 멀리 중국에까지 눈 돌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조선조 태평성대 세종대왕 시절에도 소신 공직자들이 있었다. 명재상 '황희'(黃喜)는 후일 세종대왕이 된 충녕대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해 귀양을 갔던 인물이다. 그러나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자신에 반기를 들었던 황희를 불러들여 24년간 정승으로 두고 국사를 논의했다. 세종에게는 또 회의나 토론 때마다 단골로 소수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이조판서 '허조'(許稠)가 있었다. 그는 나라 인재 충원의 책임자로서 철저히 의심하고 검증하여 문제를 제기했다. 세종은 거침없이 직언하고 따지는 그를 10년 간 곁에 두고 좌의정에까지 승진을 시켰다. 세종에게는 정승 '신개'도 있었다. 그는 왕이 사초(史草)와 실록을 열람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율을 확립한 인물이다. 왕이 실록을 읽어보겠다고 할 때마다 반대해서 무산을 시켰다. 세종은 그런 그가 맘에 들지 않았으나 그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오랫동안 조정에 중용을 했다. 공·사 조직에는 교황청의 성인 추대과정에서 후보자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조사하고 반대 검증을 담당하는 카톨릭 율사(律士)에서 유래된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고 불리는 직책이나 사람이 꼭 필요하다. 이 직책은 조직이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fallacy of generalization)'나 '집단 사고(groupthink)'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여 건강하고 강한 조직이 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이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Holdings Inc.)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사태로 인해 망했다고 하지만 실은 당시 최고 경영자(CEO) 리처드 펄드(Richard Fuld)의 독선적이고 호전적인 투자 방침에 대해 제동을 거는 충직한 임직원이 없었기 때문에 망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직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강해야 하지만 조직 구성원도 강해야 한다. 조직에는 장(長)의 방침에 원칙론으로 접근하고 직언하는 '직언거사'가 있어야 한다. 옛 중국의 원앙·위징이나, 조선의 황희·허조·신개 등도 다 직언거사들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강한 리더십과 팔로우어십 상호간에 포용적인 조화를 잘 이루는 것이다. 직위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공·사 조직에 직언거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