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요즘과 같이 체계화 된 제도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입신(立身)하려면 과거시험(科擧試驗)에 응시를 해야 했다. 이 과거제도의 시초는 고려시대를 지나 신라시대까지도 거슬러 갈 수 있겠지만, 제대로 체계가 잡힌 것은 조선시대로 보인다.  양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응시자격이 주어지고, 자신의 실력에 따라 초급관리를 뽑는 소과(小科)를 거쳐 좀 더 고급관리를 뽑는 대과(大科)에 나아갈 수 있었고, 과거시험은 요즘의 고등고시처럼 1차 시험인 '초시(初試)' 그리고 2차 시험에 해당되는 '복시(覆試)'가 있었으며, 임금님이 친히 배석한 마지막 단계의 '전시(御前試)'에 급제하면 한 순간에 고위직으로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글줄이라도 읽은 서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과거를 꿈꾸었을 법은 하다.  철저히 계급사회였던 당시에 출신성분에 따른 제약이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굳이 연령제한 같은 것은 두지 않았던 듯, 약관(弱冠)의 나이에 소년등과하여 가문을 크게 빛내고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사례의 사화(史話)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에 따라 신분과 출세가 결정되는 음서제도(蔭敍制度)에 비하면, 과거제도가 실력있는 인재를 널리 등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합리적인 제도라 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런 사회적 경험도 경륜도 전무한 어린 아이가, 말 그대로 소년등과하여 높은 벼슬이 주어졌을 때, 여간 자기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스스로 권력에 중독, 그 권력이 오남용(誤濫用)되기 쉽고, 또 자신도 망치는 등 그 폐해가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야 그렇다 하더라도,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21세기에, 또 그 때와 달리 문맹자(文盲者)가 거의 아니 전혀 없는 지식의 공유시대에, 골방에서 책만 읽던 학생들에게 단지 특정 관문을 통과했다고 하여, 갑자기 거의 무소불위에 가까운 막강한 권력을 쥐어 주는 현행제도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소년의 나이에 벼락출세를 했던 모 고위직 공무원, 혹은 모 정치인들의 그 오만방자함은 그 사람들의 태생적 인간됨에 앞서 이 시대 우리 제도의 모순이 빚어 낸 기형(畸形)이 아닌지 모르겠다.  동안(童顔)의 젊은 판사가 가장 권위적으로 보이는 법복을 차려입고 단상 높이 앉아, 단상 아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심판한다? 쾨쾨묵은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아니더라도 그런 광경이 결코 자연스럽거나 합리적 상황으로 보이지는 않는 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흔히들 장유유서의 문화는 유교적이라고도 하지만,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곳, 어느 종교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장유유서의 의식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그런 개같은 사람사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내가 하지 않았지만, 아들도 손주도 그런 괴물인간을 만들 생각은 진심으로 없으며, 다만 자신의 태생과 연령대에 어울리는 소박한 부(富)와 지위를 가져주길 소망할 뿐이다. 책으로 읽어서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없지는 않지만, 반드시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지식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그리스도 가라사대 '내가 어릴 때는 생각하는 바가 어린아이와 같았고, 장성하여 어른이 되니 비로소 생각하는 바가 어른과 같도다' 라고 하였다.  현대판 과거제도인 사시(司試)도 좋고, 현대판 음서제도 냄새가 조금은 나는 로스쿨(Law school)같은 것도 좋겠지만, 머리속에 특정 지식만 들어 있고, 경륜도 인격도 채 영글지 못한 철부지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어린아이에게 서슬 퍼런 닙뽄도(日本刀)를 쥐어주고 칼춤을 추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도 다칠 수 있지만, 그 자신도 다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매일 짓는 밥도 뜸이 들어야 제 맛을 내고, 아이도 열 달이 차야 건강하게 태어나며, 소나무는 백년을 자라야 짙은 그늘을 드리워 주는 고목이 된다. 불과 수 년을 자란 유목(幼木)으로 대들보를 삼고자 하니 그 집은 위험할 수밖에 없고, 튼튼한 기둥은 반드시 일정 수령(樹齡)이 요구되는 법,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요 대들보인 사법체계를 이제야말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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