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드 배치를 두고 그 논란이 좀처럼 식지를 않고 있다.특히 미국산(美國産) 대공(對空)무기의 위력이나 실체의 존재감을 드러낸 사드는 우리 영토 수호에 필요한 무기임은 확실하다.사드는 보수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중간 철저한 이해(利害)전쟁 속에 우리나라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극복할지,어떻게 대응할 지는 조만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곽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잠잠하지만 사드배치를 두고 중국 측은 자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중요한 것은 이 사드를 두고 중국 측은 자국내 진출한 미국의 대표적인 유통기업인 '월마트'는 놔두고 한국 롯데 그리고 금한령(禁韓令)을 하는 등 전형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를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 자국실리를 추구하기위한 한·미 양국을 압박하는 고도의 전략일 수 있었다. 가관인 것은 중국이 세계평화를 구현한답시고 신무기를 개발해 배치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영토수호를 위해 사드를 배치하던,핵을 무장하던 중국 측이 간섭할 이유가 없다. 이는 타국 안보에 대한 내정간섭(內政干涉)인 것이다. 이를 통해 재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경제와 글로벌 인적 자원,군사력 등 이 세계10위권이지만 주변국가보다는 열세여서 오늘의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 역시 대한(對韓) 정책을 보면 상옥추제(上屋抽梯·지붕위에 올라가게 해 놓고 사닥다리를 떼버리는 행위)로 보면 적절할 것 같다.살펴보면,'사드는 사드고, 경제는 경제다'는 등으로 모든 것을 철저하게 별건(別件)으로 보는 시각이다.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를 다시 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세일 가스와 무역협정 재 운운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결국 G2의 눈에는 한반도는 자기네들의 실리를 취하는 공간으로 봐 유감이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그리고 통일은 막연한 기대 수치에 불과 하는 등 주변국가들의 횡포는 국민적 공분을 야기시키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전작권' 회수 발언의 배경은 우리 스스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실현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일 수 있다.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안보전쟁' 아니 '실리전쟁'은 우리 스스로가 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한 것이다. 6·25가 발발한지 67년 됐다. 1953년 휴전 후 북한은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자체 무기생산체제를 갖췄다. 1·21 사태,푸에블로호 납북사건,울진·주문진 등 전국에 무장공비 침투를 시키고 도발을 감행했다. 또한 수시로 휴전선 등 대남 무력도발과 공공연히 적화통일(赤化統一)을 언급하여 남북 간 긴장 및 안보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1969년3월 미국은 월남전을 계기로 대 아시아 정책을 변화하면서 안보지원을 축소하는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발표했다.이 닉슨 독트린은 '아시아에서 재래식 전쟁이 발생하면 당사국이 1차적인 방위책임을 갖고,미국은 상호방위조약 테두리에서 원조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에 따라 우리정부도 안보상황 급변에 따른 국방정책을 대미 의존에서 자주국방(自主國防)으로 급선회했다. 그때 우리 군의 군사장비는 해외수입 또는 유·무상 원조 등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당시 박정희(이하 박정희) 대통령은 이 대책으로 1970년8월 국방과학연구소(國防科學硏究所)를 설립하여 군이 가장 우선 필요한 소총,박격포,대전차 무기 등과 이에 소요되는 탄약과 무기의 연구개발를 지시했다. 그리고 시제품과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민간에서 제품화 및 양산하여 군에 공급하도록 한 것이 국내 '방위사업'의 시초다. 더불어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위해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국내에 방위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결심했다. 박정희는 1971년 신년사를 통해 "1971년은 국운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해이며,앞으로 2~3년간이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며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과 고도의 기술 인력이 필요하고 국내 기반이 전무여서 실제 무기 생산을 맡아야 할 기업과 민간차원에서는 선뜻 방위산업에 나서지 않았다.그래서 박정희는 1971년11월 예비군 20개 사단 경장비 무장에 필요한 화기,장비 및 초기 비축탄약 확보와 소총,기관총 등 개발을 골자로 한 '번개사업'을 추진하는 특명(特命)을 지시하게 된다. 민족 간 피를 부른 전쟁 6·25가 주는 의미는 '자주국방(自主國防)'의 필요성이다.물론 박정희 정권 주도하에서 추진된 자주국방이지만, 재계는 풍산(豊山)이 최초이다. 그리고 창업자는 고 류찬우(柳纘佑·1923~1999) 회장이다. 경주 도심에서 서북 방향으로 차로 30분쯤 가면 풍산 안강공장이 나온다. 대부분의 국민은 '풍산'이란 기업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경주시민과 군에서는 풍산의 위상을 잘 알고 있다. 이 기업은 국내 최초 방위산업체이기 때문이다. 창업자인 류 회장은 서애 류성룡의 12대 후손으로 대구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을 오가며 개인사업을 성공을 했다. 그러나 조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하려는 사업보국(事業保國)의 뜻을 바탕으로 1968년 비철금속 신동업체인 풍산금속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같은 해 포항제철도 설립됐다.그리고 공장 입지를 한국 전쟁 당시 안강기계전투의 호국정신이 깃든 경주 안강읍에 우리나라 자주국방과 방위산업의 전진기지인 안강공장을 설립했다.1972년 풍산은 정부로부터 종합탄약 생산업체로 지정받고 첫 생산품인 M1 소총용 캘리버 30탄약을 시작으로 5.56mm부터 8 인치 곡사탄까지 우리 군이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탄약(소구경탄,대공탄,함포탄,박격포탄,전차포탄 등)을 개발생산해 공급했다. 당시 풍산의 기술진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정신으로 시제품을 개발과 함께 시험했다. 또 밤을 새워 자료를 분석하고 설계를 수정하여 양산하는 등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땀을 쏟았다. 이같은 노사간의 열정이 오늘의 풍산을 만들었다. 풍산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한정된 내수시장에서 세계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해 해외수출도 적극 추진했다. 특히 미 육군으로 완성탄을 수출하고 민간용 스포츠 탄 시장에서 4대업체로 자리매김하는 등 세계적인 종합탄약업체로 부상했다.더욱이 현재 류진 회장은 미국 인맥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업인 외교'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는 오는 28일 문 대통령의 방미 경제인단에 포함됐다.앞서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역대 정부의 방미에 동행하는 등 '미국통'이다. 고가의 첨단 군사장비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탄약은 저가의 군수품일 수 있다. 그러나 풍산에서 생산된 탄약은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을 실현해야 한다는 국가 및 국민적 의지가 담긴 소중한 자산이다. 1970년대 풍산을 계기로 현재 국내 많은 방산업체들은 세계적인 수준이며,대한민국도 자주국방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마저 조성됐다. 사드는 물론 이보다 더한 국가적 쟁점은 무수히 발생할 것이다.이를 극복하려면 '자주국방'뿐일 것이다. 그 첫 발걸음을 한 '풍산'에게 늦게나마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 까.